당내 입김에…'공천 소신'마저 뒤집은 이시바

연이은 말 바꾸기에 비난 직면
선거땐 "비자금 의원 엄격 공천"
취임 후 "신청하면 원칙적 승인"
27일 중의원 선거전 세결집 총력
금리인상 번복 이어 핵심공약 후퇴
당 기반 약해…비주류 한계 지적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4일 열린 임시국회에서 첫 소신표명 연설을 한 뒤 자리에 앉아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신임 총리가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강조했던 핵심 공약과 견해를 뒤집으면서 ‘선거용 말 바꾸기’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당장 이달 27일 중의원 선거가 예정된 가운데 당의 결속을 위해 비주류인 총리가 주류의 요구에 굴복해 핵심 공약들을 접었다는 해석이 나온다. 무파벌·비주류의 총리를 중심으로 여러 정치 세력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불안한 당 운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4일 열린 임시국회에서 첫 소신표명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4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와 자민당 집행부는 비자금 문제로 징계받은 의원이 지역구 공천을 신청하면 공천 및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를 원칙적으로 승인할 방침이다. 총재 선거 중 본인이 “공천이 적합한지 논의는 철저하게 행해져야 한다”며 엄격한 기준을 들이댔던 사안인 만큼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총리는 문제가 된 의원들에게 상황 설명을 요구하는 절차를 밟아 국민의 이해를 얻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당 안팎에서는 ‘후퇴’라는 비판이 거세다.


앞서 자민당 일부 파벌은 정치자금 모금 행사를 주최하면서 할당량 이상 돈을 모은 소속 의원들에게 초과분의 돈을 다시 넘겨주는 방식 등으로 비자금을 조성해 왔다. 당은 이런 사실이 검찰 수사 등으로 공개되자 기존 최대 파벌이던 옛 아베파 의원 36명 등 39명을 징계했다. 그러나 처벌 수위가 약해 여론이 나빠졌고 기시다 후미오 내각 지지율이 추락하며 결국 기시다 전 총리가 총재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게 됐다.


이시바 총리가 입장을 바꾼 배경으로는 우선 27일로 예정된 중의원 선거가 거론된다. 이시바 총리는 당초 ‘신중해야 한다’던 중의원 해산을 이달 9일 실시하고 27일 선거에 치르겠다고 밝혔다. 집권 초기 내각 지지율이 높을 때 기세를 몰아가겠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선 총선 일정이 빠듯한 만큼 총리가 당 내부와 갈등을 벌일 시간이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면엔 당내에서 여전히 불안정한 ‘언더독 이시바’의 한계가 작용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아사히신문은 “총재 선거의 결선 투표에서 경쟁한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상과의 표차가 불과 21표였다”며 “당 융합이 최대 과제가 된 상황에서 다카이치 지지로 돌아선 많은 ‘비자금 의원(아베파)’과 대립할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여기에다 이시바 총리가 과거 이끌던 파벌인 ‘수월회’의 정치자금 보고서에서도 부실 기재 혐의가 발견돼 파장을 낳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자민당 내에서 지지 기반이 약한 인사다. 지난달 27일 자민당 총재 선거 결선에서도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옛 기시다파와 스가 요시히데(가운데) 전 총리를 따르는 비주류·무파벌 인사들이 지지한 덕에 다카이치 사나에 전 경제안보담당상에 역전승리했다. 아소 다로(왼쪽) 전 총리가 이끄는 아소파와 과거 주류 세력이던 옛 아베파의 지원을 받은 다카이치는 비록 낙선했지만, 이시바 총리와의 표차는 20여표였다./AP연합뉴스

이시바 총리는 금융 정책을 둘러싸고도 말이 바뀌어 논란이 되고 있다. 엔화 약세에 따른 물가 상승을 지적하며 금리 인상을 강조하던 그는 이달 2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를 만난 뒤 “금리를 인상할 환경이 아니다”라며 기존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갑작스러운 말 바꾸기에 141~142엔대에 거래되던 달러당 엔화는 147엔대를 찍으며 엔화 약세(환율 상승)로 급변했고 추가 금리 인상 기대감이 후퇴하면서 주가는 상승했다. 이 역시 선거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지적이다. 고노 류타로 BNP파리바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이달 중의원 해산, 총선거를 앞둔 가운데 주가 하락이 계속돼 시장 우려가 강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유권자들에게 주는 것을 피하고 싶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편 이시바 총리는 이날 열린 임시국회에서 첫 소신 표명을 통해 “정치를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나는 용기와 진심 가지고 진실을 말하고, 국민을 납득시키며, 공감을 얻는 정치를 실천함으로써 신뢰를 회복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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