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조선업계 갈등 고조…정부, 中 후판 들여다본다 [헤비톡]

산자부 덤핑사실 조사 착수
조선업계, 원가절감 우려
하반기 협상도 장기화 예상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후판을 두고 철강·조선업계 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정부가 중국산 후판 제품 덤핑으로 인한 국내 철강 산업 피해 여부를 조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중국산 사용량을 늘려 원가 절감을 노리는 조선사들과 후판 가격 ‘정상화’를 노리는 철강사들 간 의견이 대립하며 하반기 후판 협상도 장기화될 전망이다.


4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관보 공고를 통해 ‘사강’을 비롯한 중국 후판 업체들을 상대로 ‘덤핑 사실 및 국내 산업 피해 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산업부는 3개월 간 예비 조사를 마친 뒤 본조사 판정 절차를 밟을 예정으로 불공정 무역 행위라고 최종 판단되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 방침이다. 최근 중국 철강 업체들이 자국 부동산 시장 침체 장기화로 내부 철강 수요가 줄자 해외에 후판을 비롯한 자국산 제품을 저가로 밀어내는 데 따른 조치다.


국내 철강 업계는 중국 업체들의 무분별한 저가 후판 수출 탓에 사업에 피해가 크다고 지적해왔다. 올 상반기까지 중국산 후판 수입량은 약 69만 톤으로 2022년 한 해 물량을 넘어섰다. 중국산 후판은 국내산 대비 톤당 약 10만 원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제철은 7월 중국 업체에 대한 반덤핑 제소도 했다. 회사 관계자는 “정부의 이번 조치는 중국의 불공정거래로 인한 국내 산업 피해 사실이 있었다는 인지에 기반하고 있다”며 “산업 피해 사실 입증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철소에 후판이 쌓여있다.

반덤핑 조치에 대한 조선 업계의 입장은 다르다. 반덤핑 관세 등으로 원가 절감 효과 등이 줄어들어서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국내 빅3 조선사(HD한국조선해양·삼성중공업·한화오션)의 중국산 후판 사용 비중은 20% 정도다. 두께 6㎜ 이상으로 두꺼운 철판인 후판은 주로 조선·건설 현장에서 쓰인다. 특히 선박 건조 비용의 약 15%를 차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조선사들이 ‘보세공장 제도’를 활용하면 반덤핑으로 인한 면세 혜택을 누릴 수 있어 피해가 제한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보세공장 제도는 수입 신고 없이 외국 원재료를 국내 공장에 반입해 제조·가공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다만 HD한국조선해양을 제외한 조선사 및 기자재 업체들은 ‘수입 신고’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현재로서는 혜택을 누릴 수 없다.


조선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 조선 업체들은 새로운 통관 방식을 적용하거나 보세공장을 운영하기 위해서 시스템 구축 및 추가 인력 등 비용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며 “자금 여력이 부족하고 중국산 후판 비중이 높은 중견사들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두 업계의 하반기 후판 가격 협상도 좀처럼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조선 업계는 후판 원재료인 철광석 가격 하락에 따라 후판 가격이 인하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철강 업계는 지속되는 업황 부진 등으로 반대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한편 올해 상반기 조선사와 철강사들 간 후판 계약은 톤 당 92만∼93만원으로 작년 하반기 대비 2만∼3만원 하락한 가격에 체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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