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 된 기초수급자…성공레시피 쓴 '밥과함께라면'

◆용인시 자활사업 인기에 '3호점' 오픈
메뉴 개발부터 직원 교육까지
사업장 운영·관리 전과정 지원
가성비 좋은 '청년맛집' 입소문
잇단 호평에 지자체 벤치마킹도

지난달 30일 밥과함께라면 동백호수점에서 정혜영 용인시자활센터 정혜영 팀장(가운데)과 종사자들이 밝게 웃고 있다. 사진 = 손대선 기자

#40대 초반 주부 A씨는 용인시가 지원한 분식점 ‘밥과함께라면’ 1호점에서 5년간 일했다. 초등학생인 두 딸을 기초생활수급에 의존하며 키웠지만 이런 생활에 언제까지 안주할 수 만은 없었기 때문이다. A씨는 이 곳에서 일하며 한식 조리사 자격증까지 따 같이 일하던 동료들과 1호점을 인수해 독립했다.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어엿한 자영업자로 변신한 것이다.


용인시가 취약계층의 자립을 돕기 위해 시작한 분식점 ‘밥과함께라면’이 저소득층의 자립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밥과함께라면은 2018년 8월 용인지역자활센터가 시의 지원을 받아 기흥구 동백동에 사회서비스형 사업단으로 1호점을 연 것이 시발점이다. 센터는 1호점을 자활사업의 모범 사업장으로 만들기 위해 체계적으로 지원했다. 메뉴 개발부터 조리법 관리, 직원 조리자격증 취득, 직원 교육 등 매장 운영에 필요한 모든 과정에 관여했다. 수익금은 우선적으로 매장 운영에 필요한 비용, 적립금 등으로 사용하고, 남는 수익금은 근로자들에게 배당해 자립을 도왔다. 매출이 예상을 웃돌면 인센티브까지 지급했다. 한부모, 결혼이민 여성 등 기초수급가정의 40~50대 사연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새출발을 꿈꾸었다.


덮밥과 라면, 그리고 김밥이 주력 메뉴인 이곳은 비슷한 규모의 프랜차이즈 분식점보다 500~1000원 정도 저렴한 가격에 직원들 특유의 친절함이 더해지면서 주변 상인들과 청년 층이 즐겨 찾는 지역 명소가 됐다.



몽골 출신 결혼이민여성 니암돌궐(34)씨가 밥과함께라면 2호점 주방에서 라면을 서빙하고 있다. 사진 제공 = 밥과함께라면

안정적인 매출에 힘입어 밥과함께라면은 지난해 8월 의미 있는 결실을 맺었다. 1호점과 출발을 함께 한 근로자 7명 중 3명이 힘을 합쳐 같은 자신들의 일터를 인수해 ‘독립’을 선언한 것이다. 기초수급에 의존하며 홀로 두 딸을 키우던 여성, 50대 독거중년남 등이 이제는 이 가게의 운영을 책임진다. 지난해 10월 가까운 동백호수변에 문을 연 2호점은 1호점에서 독립하지 못한 이들을 승계해 고용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었다. 2호점은 용인시 캐릭터인 ‘조아용 김밥(야채)’과 ‘화나용 김밥(매운맛)’ 등 독창적인 메뉴로 MZ세대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인기에 힘입어 최근에는 처인구 금학로에 3호점을 오픈했다. 2호점에서 근무하는 몽골 출신 결혼이민여성 니암돌궐(34)씨도 1호점의 성공을 자신의 손으로 다시 한 번 재현하고 싶어했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는 고수익 직종으로 분류되는 캐시미어 판매업을 했다는 그는 용인대학교 아동심리학과를 나왔다. 3개 국어에 능통한 인재이지만 결혼이민여성에게는 너무 좁은 취업문에 좌절하다가 5살 딸아이에게 가난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생소한 요식업에 뛰어들었다. 오징어덮밥이 가장 자신이 있다는 그는 “아르바이트 등 안 해본 일이 없다. 한국에 온 지 10년 만에 비로소 안정적인 직장을 갖게 됐다”며 털어놓았다.



밥과함께라면 2호점의 인기 메뉴인 라볶이와 주먹밥. 사진 제공 = 밥과함께라면

용인시자활센터 정혜영 팀장은 밥과함께라면이 대형 프랜차이즈 분식점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게 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종사자들의 의지’라고 한마디로 답했다. 정 팀장은 “대부분 어렵게 사셔서 자립의지가 매우 강하다”며 “엄마의 마음으로 내 가족을 먹인다는 의지로 음식을 만드신다”고 말했다.


밥과함께라면은 취약계층 자활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인근 지자체 벤치마킹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성남만남지역자활센터는 밥과함께라면을 벤치마킹한 '밥과함께라면 성남만남점'을 개소하기도 했다.


밥과함께라면 2호점에서는 8명이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2개조로 나눠 일한다. 현재 한달 1500만원이상 매출을 올리고 있다. 직원들에게 돌아가는 월급은 150만 원 선. 아직 자립을 말하기는 미흡한 수준이지만 이곳에 근무하는 모든 이들은 “이제 시작”이라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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