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체코 프라하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방문을 계기로 동포 초청 만찬 간담회가 열렸다. 80여 명이 참석한 이 행사의 한 테이블에서는 프라하를 대표하는 ‘카를교의 전설’이 회자됐다고 한다. 카를교에는 왕비의 고해성사 비밀을 지키다 순교한 성인 요한 네포무크를 기리는 청동상이 있는데 이곳 아래 손을 대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다.
총 24조 원 규모의 체코 두코바니 원전 건설 사업 수주를 위해 현지 한국수력원자력 직원들이 눈코 뜰 새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팀 코리아’ 소속 가족들도 매일같이 카를교를 찾아 수주 성공을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고 한다. 참석자들은 “카를교의 전설이 통한 것 같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한 참석자는 프라하 동포 간담회는 여느 자리와 달리 최종 원전 계약 의지를 다지며 사뭇 비장하기까지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체코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코다’라는 브랜드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동유럽 제조업 강국이다. 하지만 체코는 전기차로 대표되는 미래차 경쟁에서는 인접국 헝가리에 밀리고 있다. 헝가리에는 독일 프리미엄 자동차 메이커 3사가 모두 공장을 운영 중이다. 세계 10대 배터리 제조 업체 중 5개사도 진출해 있다. 한국 기업인 기아뿐 아니라 삼성SDI·SK온도 헝가리에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미래차 생태계를 완성한 헝가리의 질주에 체코는 위기다. 체코에 한국은 미래차와 첨단산업 경쟁력을 한 단계 올려 줄 핵심 파트너로 평가받는다. 전기차와 2차전지뿐 아니라 고속철도와 같은 인프라 기술력을 가진 한국과의 협력이 간절한 상황이다. 페트로 파벨 체코 대통령이 “두코바니 원전 건설의 한국 수주를 낙관한다”고 밝히고 윤 대통령과 페트르 피알라 총리가 우리 기업인 두산스코다파워를 방문해 “함께 짓는 원전”을 선언한 것 역시 이런 이유다. 체코를 교두보로 수백조 원으로 평가받는 세계 원전 시장에 한국 기업의 진출이 확대될 것이란 기대는 실존하는 경쟁력이 바탕이다.
탈원전을 내세워 에너지 문제를 과도하게 정치화했던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해외 원전 수주는 ‘0(제로)’였다. 재계 10위권 기업이 공중분해 위기를 맞기도 했다. 김정호·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해 조국혁신당 의원 등 22명은 체코 원전 수주에 대해 “덤핑 가격을 제시해 수조 원대 손실이 발생해 국민 혈세를 쏟아부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야당은 7일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내용을 낱낱이 파헤치겠다며 벼르고 있다. 수개월 전부터 산업통상자원부에 국회 산자위 위원들의 자료 제출 요구가 수천 건이 넘는다고 한다. 묻지마식 폭로는 또 한번 탈원전이라는 ‘자해 행위’를 반복하게 될 수 있다. 카를교의 간절한 목소리를 야당 의원들도 들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