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서울 노원구에서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은 택배 운송장에 적힌 이름과 집주소로 범죄를 저질렀다. ‘택배 포비아’가 일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운송장 비식별 조치 등 대책 마련에 나섰다고 홍보해왔다. 하지만 ‘자율 규제'로 강요하기는 힘들다며 택배사들의 개인정보 노출을 방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실이 8일 개보위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개보위는 3년 전부터 택배 운송장 규제를 약속해왔지만 실태 파악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업체에 자율 규제의 필요성에 적극 안내하겠다”고 할 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개보위는 2021년 초 ‘세 모녀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그해 8월 11개 택배사들과 간담회를 갖고 수기운송장을 전산운송장으로 바꾸는 데 의견을 모았다. 운송장의 이름·전화번호를 필수적으로 비식별 처리하자고도 합의했다. 2023년 9월에도 CJ대한통운·쿠팡로지스틱스·한진 등 주요 택배사·쇼핑몰과 간담회를 통해 운송장 개인정보 보호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면서 “'민관협력 자율규제' 시행으로 온라인 쇼핑 분야의 개인정보 보호 조치가 대폭 강화됐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정작 개보위는 ‘택배 운송장 개인정보 보호 현황’을 묻는 김 의원실 질의에 “자율규제는 개인정보처리자가 스스로 개인정보 보호 활동을 위해 자율 규약을 제정하고 준수하는 자발적인 규제 체계”라며 “자율 규제의 본질에 따라 참여를 강제하는 것은 한계”라고 답변했다. 그러면서 "물류업계의 개선 노력이 필요하며 소비자들도 운송장을 제거하는 등 스스로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이에 김 의원은 “국민의 개인정보를 지키는 주무부처로서 무책임한 답변”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년간 개보위 추진 활동을 두고도 "관련 지적이 나올 때마다 면피용 형식적 답변만을 늘어놓았다”고 꼬집었다. 개보위는 2020년 8월 방송통신위원회, 행정안전부 등에 흩어져 있던 개인정보 관련 기능을 통합해 출범한 장관급 중앙행정기관이다.
개보위가 ‘자율규제’를 탓하는 사이 다수 택배사들과 쇼핑몰은 수신인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그대로 노출해 운송하고 있다. 김 의원은 “자율규제로 풀 수 없다면 다른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거나 타부처와 협업을 통해서라도 개선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며 “지금처럼 안일하고 방만하게 접근할 것이 아니라 빠른 시일 내에 구체적이고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