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취임 8일 만인 9일 중의원(하원)을 해산했다. 집권 자민당은 불법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 12명을 중의원 선거 공천에서 배제하는 승부수를 띄웠지만 당내 불만과 야당의 공세 등 가시밭길이 예상된다.
교도통신·NHK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날 오전 임시 각료회의를 열어 중의원 해산을 결정했다. 이날 개최된 국회 본회의에서 누카가 후쿠시로 중의원 의장이 해산 조서를 낭독하면서 중의원은 최종 해산됐다. 새로운 중의원 의원을 뽑는 총선은 이달 15일 고시된 후 27일 투표가 실시된다. 2021년 10월 이후 약 3년 만에 이뤄지는 이번 총선에서는 소선거구 289석과 비례대표 176석을 합쳐 총 465명의 의원을 새로 뽑는다. 내각제인 일본은 총리의 권한으로 집권 초기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통해 국민들의 신임을 묻는 절차를 밟는다.
현지 언론은 이번 선거의 쟁점으로 자민당의 비자금 스캔들을 둘러싼 정치 개혁과 물가 상승에 대응한 경제 대책을 꼽았다. 자민당은 비자금 스캔들에 연루된 의원 12명을 차기 중의원 선거 공천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하며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표심에 호소했다.
앞서 자민당은 지난해 파벌 정치자금 스캔들에 연루돼 당으로부터 가장 높은 수위의 중징계를 받았던 의원 6명을 공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일자 징계 수준이 그다음으로 높은 6명을 새로 추가한 것이다.
이시바 총리는 이날 여야 당수 토론에서 “민주주의에는 어느 정도 비용이 들지만 자민당은 돈에 좌우되지 않는 정치를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공천이 배제된 총 12명 중 11명이 당내 최대 파벌이었던 옛 아베파(1명은 옛 니카이파) 소속으로, 해당 파벌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게 일고 있다. 자민당은 이날 상대적으로 징계 수준이 낮은 비자금 연루 의원을 공천하더라도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를 허용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 역시 해당 의원들이 많이 소속된 옛 아베파 측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공천 문제로 옛 아베파에서 탈당 발언까지 나오는 가운데 야당은 연립 여당의 과반수 붕괴를 목표로 비자금 문제를 집중 공략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노다 요시히코 입헌민주당 대표는 자민당 공천 발표를 두고 “여전히 (비리 의원) 대다수가 공천을 받게 된다”며 “탈세와 비슷한 행위를 한 사람들에게 국민의 세금이 쓰일 수 있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현재 의석은 연립 여당인 집권 자민당(256석)과 공명당(32석)이 과반인 233석을 크게 웃도는 288석을 차지하고 있다. 야당은 입헌민주당 98석, 유신회 41석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