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4일 폴란드 현지에서 열린 방산전시회 ‘MSPO 2024’를 계기로 한화가 폴란드 정부에 K239 ‘천무’ 수출형 다연장 로켓 ‘호마르-K’(HOMAR-K·)에서 지상 표적은 물론 해상에 떠 있는 적 함정을 공격할 수 있는 ‘대함 탄도미사일’ ASBM(Anti-Ship Ballistic Missile) 통합을 제안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방산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실 이면에는 폴란드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K239 ‘천무’ 도입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폴란드 군용으로 K239에서 발사할 수 있는 ATACMS급 전술 탄도미사일을 먼저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유인 즉,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토치카-U 전술 탄도미사일을 활용해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 베르단스크항에 정박해 있던 러시아 해군의 앨리게이터급 상륙함 ‘사라토프함’(Saratov) 격추를 비롯해 로푸카급 상륙함 1척 중파 및 1척 소파, 공항을 공격해 러시아 22군단 탄약고 파괴 등의 놀라운 성과를 올렸다는 소식이 알려져면서 전술 탄도미사일의 가치가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화는 동남아시아 시장에도 전술 탄도미사일 수출을 꾀하고 있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군사연감 ‘제인연감’에 따르면 지난 9월 27일에 막을 내린 필리핀에서 열린 아시아 방산전시회 ‘ADAS 2024’에선 한화가 K239 ‘천무’ 다연장 로켓 발사대(MRL)용 신형 대함 탄도미사일(ASBM)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측은 “현재 ASBM이 개발 중이지만 2027년까지 실전 배치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필리핀 육군의 해안 기반 대함 공격 능력과 해안경비대의 해안 방어 목적으로 ASBM을 사용할 수 있게 설계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ASBM은 개발 초기 단계로 한국 및 폴란드 군에서 운용 중인 K239에서 발사할 수 있는 최신 탄종이다. K239는 130㎜, 239㎜, 600㎜의 다양한 탄약 발사가 가능하다. CGR-80(사거리 80㎞급 유도로켓), CTM-MR(사거리 160㎞급 전술유도탄), CTM-290(사거리 290㎞급 전술유도탄) 등의 제품 옵션도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현존하는 미사일 가운데 가장 위력적 무기체계로 탄도미사일을 꼽을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대함 탄도미사일로, 냉전 시절 소련이 압도적으로 우월한 미 해군을 상대하기 위해 개발을 시작한 무기체계였다. 하지만 핵무기 관련 군축 협상이 이뤄지고 미국과 소련이 상호 개발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전력화 되지 못했다. 최근 들어 세계 최강인 미 해군력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 중국, 이란 등이 속속 개발에 박차를 가하면서 다시 전략무기로 부각되고 있다.
실제 연초에 대함 탄도미사일 관련한 외신 보도가 전 세계 시선을 끌었다. 예먼 후티(족) 반군이 현대 전쟁사에 새로운 장을 써 내려갔다는 소식이다.
로이터와 AFP 통신 등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미국과 영국 선박을 미사일로 공격했다. 공격 대상은 미국 선박 ‘스타 나시아호’, 영국 선박 ‘모닝 타이드호’였다. 이는 하마스 소탕을 위한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전쟁을 비판하며 지난해 11월부터 홍해를 지나는 선박을 수십차례 공격한 연장선이다.
주목할 점은 이 과정에서 후티 반군이 선박 공격과 반격을 위해 무인항공기(UAV), 대함순항미사과 함께 대함 탄도미사일(ASBM)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외신들은 실전에서 대함 탄도미사일이 사용된 역사상 첫 사례라고 치켜세우며 의미를 부여했다.
후티 반군은 홍해 상선에 공격을 감행했을 때 사용한 대함 탄도미사일(ASBM)은 이란 기술을 기반으로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명 ‘아세프’(Asef) ASBM은 500kg 탄두를 탑재하고 최대 400㎞ 거리의 함정을 목표로 타격 임무를 수행하는 게 가능하다.
ASBM은 종말 단계에서 함선과 같은 해상의 이동 목표물을 찾아낸 뒤 이를 추적해 타격하는 탄도미사일이다. 중국이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등 해상 전력을 자신의 세력권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핵심 무기가 바로 ASBM이다. 중국이 미국 군사력의 서태평양 활동을 차단·억제하기 위해 고안한 전략인 ‘A2/AD’(반접근·지역거부)의 핵심이다. ASBM이 ‘항공모함 킬러’로 불리는 이유기도 하다.
대함 탄도미사일 개발이 세계적 추세가 되면서 북한도 이를 기반으로 한 ‘북한판 A2/AD’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당장 지난 2023년 6월 북한은 ‘군사조직편제 개편안’을 심의·의결했다. 전략군을 2개의 부대로 분할·개편하는 것이다. 우선 미국이 중국을 공격할 경우 방어와 대응 타격을, 다른 하나는 미국 본토에 대한 공격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은 방식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북한 역시 북한판 A2/AD 전략 수립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각종 첨단 탄도미사일 개발과 수립된 전략의 시연, 실전 훈련에 나서는 것은 그 연장선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실제 북한판 A2/AD를 완성하기 위한 다양한 장거리 타격자산들이 지난해부터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미 본토를 겨냥한 ‘화성-15형 ICBM’부터 남한 내 미군 시설들을 겨냥한 초대형 방사포, 순항미사일 발사 등이 이어졌다. 특히 전술핵 운용부대 핵 반격 가상 종합전술훈련이라는 명칭으로 탄도미사일·순항미사일·핵어뢰를 이용한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차단 훈련 실시도 꾸준하게 늘리고 있는 모습이다.
뒤질세라 우리 군도 대함 탄도미사일 개발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글로벌 해군 전문매체 ‘네이벌 뉴스(Naval News)’가 한국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중국에 대한 반(反)접근/지역 거부(Anti-Access·Area Denial·A2/AD) 전략 구현을 위해 대함 탄도미사일(ASBM)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지난해 12월 ADD는 더불어민주당 김진표·김병주 의원 주최로 열린 ‘우주개발 진흥법, 작전영역으로서의 우주’ 세미나에서 중국 해군 활동에 대한 견제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미 개발된 현무 계열 탄도미사일과 인공위성을 결합한 한국형 대함 탄도탄 개발 구상이 뼈대다.
ADD가 밝힌 한국형 A2/AD 구상은 중국 측 A2/AD 체계를 축소한 형태다. 합성개구레이더(SAR)를 장착한 저궤도 정찰위성과 통신위성을 여럿 띄워 한반도 상공에서 적 군함 동태를 감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포착한 적 군함을 탄도미사일로 타격하는 임무를 부여해 대응하는 방식이다.
대함 탄도미사일로 선택할 수 있는 건 사정거리 500~800㎞의 현무-4 탄도미사일이다. 전문가들은 현무-4의 탐색기를 통해 해상에서 이동 중인 군함을 최종 순항단계서 파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컨대 서해안에 현무-4를 대함 견제용으로 배치하면 한국은 유사시 중국 해군 북해함대, 동해함대 주력 전력을 5분 만에 무력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국 북해함대의 핵심 근거지인 칭다오(青島)와 다롄(大連)은 충남 태안반도에서 각각 530㎞, 470㎞ 떨어져 있다. 중국 동해함대 사령부가 있는 닝보(寧波) 기지는 제주에서 550㎞ 거리다. 여차하면 중국 해군력 70%가 집중된 북해함대와 동해함대도 타격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