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복궁 광화문 현판을 현재의 한자에서 한글로 바꾸는 것이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변경 논의가 지지부진하고 반대도 거센 상황이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9일 한글날을 맞아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열린 ‘한글날, 세종대왕께 꽃 바치기 행사’에 참석해 함께 자리한 한글 관련 단체 관계자들에게 인사말을 하면서 ‘광화문 현판 한글화’ 문제를 다시 언급했다.
이 자리에서 유 장관은 “(2010년 전후로) 광화문 현판을 다시 만들 때 왜 그런 생각(한글화) 생각을 안 했을까 아쉽다. 지금 이야기를 하는 데 또 관계한 분들은 나름대로 (반대) 이야기를 많이 한다”며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토론하고 (한글화) 의사를 표현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유 장관이 ‘한글날을 기점으로 뭔가 해보겠다’고 말했던 것을 감안하면 논의가 장기화 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유 장관은 이날 여전히 “국민들 생각은 한글로 바꾸는 여론이 훨씬 많은 듯하다. 저도 광화문 현판은 한글로 했으면 한다. 다같이 힘을 합쳐 노력하자”고 덧붙였다.
유 장관은 지난 5월 14일 경복궁 수정전(옛 집현전) 마당에서 진행된 ‘세종대왕 나신 날’ 하례연 행사에서 돌연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광화문 현판이) 한글로 쓰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이후 다시 한번 논의에 불을 지펴보겠다”고 언급하면서 본격 논의를 위한 터닝포인트 시로 특별히 한글날을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9월 30일 ‘2024 한글주간’ 관련 기자 간담회에서는 “한글날 쯤에 진전된 의견이 있기를 기대했는데 아직 특별한 연락을 받은 것이 없다. 그때(5월)에 잠시 논의가 있었는데 지금은 크게 진도가 안 나가고 있다”고 다소 유보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유 장관은 이어 “(담당 부처인) 국가유산청과 협의를 더해보고 짧은 시간에 해결이 안 나더라도 충분히 논의를 진전시켜서 한글 현판으로 바꿀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하는 데 그쳤다.
그랬던 것이 아예 장기 논의 가능성으로 후퇴를 한 것이다. 이는 문화유산(문화재) 관계자들의 반응이 호의적이지 않고 특히 국가유산청의 강력한 반대 때문으로 해석된다.
주무 부처인 국가유산청의 최응천 청장은 10일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광화문 현판 한글화 변경 가능성을 묻는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의 질의에 “기존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며 현행 한자체의 유지 입장을 재확인했다.
최응천 청장은 이날 “광화문 현판은 (1860년대) 경복궁을 중건했을 당시 걸려 있던 현판에 가깝게 고증해야 한다는 게 문화유산 복원의 원칙에 맞는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그동안의 과정과 제작 비용 등을 본다면 (현판 제작을 둘러싼) 다사다난한 과정이 다시 시작되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 청장은 지난 7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도 “고증과 복원의 원칙은 가장 마지막 있을 때의 원형(훈련대장 임태영의 한문 글씨)로 살리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