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의 10일 첫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일 관계의 개선 흐름이 차질 없이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촉박한 다자회의 일정 속에서도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면서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긴밀한 ‘셔틀외교’를 이어나가겠다는 정상 차원의 의지를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양국 정상은 북러의 불법적 군사 협력이 인태 지역은 물론 전세계 안정에 심각한 위해를 가하고 있다는 데 공감하며 미사일 정보 공유 등 긴밀한 안보 공조를 지속하기로 했다.
윤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이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40분간 회담을 가졌다. 이시바 총리가 취임한지 9일 만으로, 윤 대통령이 일본 정상과 갖는 13번째 회담이다.
이날 회담은 상견례 성격이 짙었다. 한일 현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보다는 서로의 정책 방향을 확인하고 신뢰를 쌓는 측면에 초점을 맞췄다. 두 정상은 한일이 가까운 이웃이자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같은 보편가치를 공유하는 소중한 협력 파트너라는 데 공감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3월 이후 이뤄진 한일 관계 진전은 “양국 지도자 간 흔들림 없는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손을 내밀었다. 이시바 총리는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크게 개선시킨 양국 관계를 계승·발전해 나가고자 한다”며 “셔틀외교도 활용해 긴밀히 공조해 나갔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두 정상은 동북아의 정세 진단도 공유했다. 두 정상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의 심각함을 지적하며, 북러의 군사 협력이 불법적이라는 데 공감했다. 두 정상은 “한미일이 완성해서 가동하고 있는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 체계를 면밀하게 가동시켜 나가자”며 “한반도 긴장 고조의 책임을 한일, 그리고 한미일에 전가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고 대통령실은 전했다. 아울러 아세안 정상회의 계기에 북한과 북한 지원하는 세력에 엄중한 경고 메시지가 발신 되도록 양국이 노력하기로 했다.
이시바 총리 취임 9일 만에 성사된 회담으로 한일 관계의 굳건함이 재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강경파가 득세해온 자민당에서 이시바 총리는 온건한 성향을 보유한 비둘기파로 분류돼왔으나 지도자 교체로 인한 관계 회복 동력 훼손에 대한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이시바 총리가 강제 동원 및 일본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에 있어 사죄·반성을 토대로 한 전향적 인식을 보일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이시바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범이 묻힌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았고 2017년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다만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 순위에 올려야 하는 정상의 자리에서도 같은 입장을 견지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40년 만에 개발 협상이 재개된 대륙붕 7광구 사업에도 속도가 붙을지 관심사다.
윤 대통령은 이날 라오스에서 인태 지역 국가들과도 순차적으로 양자 회담을 가졌다. 윤 대통령은 아세안 정상회의 의장국인 라오스와 정상회담을 열고 내년 재수교 30주년을 맞이해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했다. 이외 베트남·태국 정상과도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다만 라오스에서 리창 중국 총리와 별도의 회담은 예정돼 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