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국정 위기의 진앙은 영부인이다


국정이 일대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정의 주축인 대통령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각종 여론조사마다 최저치를 보이고 있는 것이 증거다.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20%대 초반에 계속 머물러 있는데 이래서는 의대 정원 증원 등 의료 개혁이 힘을 받을 수 없다. 윤 대통령 스스로 “낮은 지지율이 개혁의 장애로 작용한다”고 인정하면서 국민의 지지에 기대를 걸고 있는데 민심이 외면하면 어떤 뚝심으로도 개혁은 좌초될 수밖에 없다.


국정이 안정을 찾지 못하는 것은 기록적인 4·10 총선 패배 후 6개월이 지나도록 여권이 별로 바뀐 것이 없다는 평가 때문이다. 국회를 장악한 야당의 입법 독주는 당연한 것이 됐고 부처마다 국정과제를 여의도에서 자력으로 해결할 방도는 없는 형국이다. 특히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마이웨이’로 충돌하며 당정 갈등이 깊어지자 관료들은 용산과 여당 눈치를 함께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여권의 전통적 지지층이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것은 이미 오래다.


윤 대통령은 총선 패배 후 정치에 더 힘을 쏟겠다고 공언하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고 기자들과의 회견을 두 차례 하기도 했지만 정국 상황은 더 꼬여 있다. 이유는 국민의힘 7·23 전당대회에서 한 대표가 압도적 승리로 당권을 쥔 후 윤·한 갈등이 악화 일로를 지속하고 있어서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 복권에서부터 김건희 여사 사과 문제까지 당정이 이견을 보이다 급기야 독대를 놓고도 틀어졌다. 의정 갈등 장기화에 해법을 모색해보려는 독대에 대통령실 반응이 부정적이자 해외 순방에 나서는 대통령 환송 자리에도 나가지 않는 여당 대표를 보며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국민은 답답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당정 갈등의 진원이 김 여사인 만큼 국정 위기의 진앙도 영부인이다. 한 대표 측은 총선 전 명품 백 수수 의혹을 놓고 김 여사를 프랑스혁명의 도화선이 된 ‘마리 앙투아네트’에 비유하며 직접 사과에 나설 것을 압박하다 1차 윤·한 갈등이 터졌다. 검찰이 명품 백 수수 의혹은 무혐의 처분하고 김 여사를 불기소했지만 주가조작 연루와 공천 개입 의혹까지 확산하며 한 대표 측의 사과 요구는 거세지고 있다.


한 대표는 한 걸음 나아가 김 여사가 대외 활동을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며 코스닥 상장사인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한 검찰의 김 여사 처분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압박했다. 대통령실은 김 여사가 진정성 있게 사과해도 야당의 공세가 사그라들 가능성은 전무하고 논란에 기름만 부을 수 있는데 한 대표가 야당처럼 용산을 들쑤시자 불쾌한 기색이 역력하다.


석연치 않지만 윤 대통령이 ‘김 여사 리스크’를 언급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것을 잘 아는 대통령실과 여당 인사들은 애써 위기의 진앙을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신문 만평에 최근에야 오른 “윤 대통령과 김 여사 중 V1, V2가 누구인가” 묻는 얘기는 이제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 되고 있다. 법률가인 윤 대통령이 법적 지위가 없는 영부인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을 폐지했다 부활을 지시한 것도 ‘영부인의 존재감’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윤 대통령이 11일 동남아시아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 10·16 재·보궐선거 후 한 대표와 결국 독대를 하기로 했지만 김 여사 문제에 대한 해법은 더 빨리 나와야 한다. 재·보궐선거 결과를 지켜보고 독대의 시기와 내용을 정하려는 정치적 셈법은 위험하다. 일부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 탄핵 준비를 공공연히 거론하는 데 이어 민주당 지도부가 정치 브로커인 명태균 씨와 김 여사의 관계를 고리로 대대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성난 민심에 휩쓸려 재·보궐선거마저 패하면 여당은 물론 대통령실의 처지가 백척간두 지경에 빠질 것이다.


윤 대통령의 5년 임기는 다음 달 반환점을 돈다. 미국 대선 등 글로벌 이벤트가 대기 중이지만 내년에는 큰 선거도 없어 당정 관계가 정상화하고 국정이 안정을 되찾으면 윤 대통령은 의료 개혁과 연금 개혁 등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과제들에 집중할 수 있다.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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