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010130)이 경영권 사수를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공개매수가를 더 높게 올렸지만 세금이나 매수 물량 측면까지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MBK·영풍(000670)보다 매력이 크지 않아 어느 한쪽의 승리를 예단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 회장 측이 11일 전격적으로 공개매수가를 인상했음에도 고려아연과 영풍정밀(036560) 주가는 약세를 보였다. 이날 고려아연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0.63%(5000원) 내린 79만 4000원에, 영풍정밀 주가는 전일 대비 6.56%(2050원) 떨어진 2만 9200원에 장을 마쳤다. 영풍정밀 주가는 공개매수가 상향 조정을 발표한 뒤 장중 한때 9% 하락해 2만 8300원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최 회장이 제시한 공개매수 가격인 주당 89만 원, 3만 5000원은커녕 MBK의 83만 원(고려아연), 3만 원(영풍정밀)에도 못 미쳤다.
거래량 역시 32만 4243주에 머무르며 이달 4일(123만 27주)의 4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영풍정밀 거래량은 187만 1322주로 고려아연보다는 많았지만 역시 4일(469만 5834주)보다 훨씬 적었다. 이날 매입을 해도 MBK의 공개매수 청약에는 응모할 수 없기 때문에 거래량이 많아야 최 회장 측의 우위를 점칠 수 있다.
고려아연이 자사주 매입 가격을 주당 83만 원에서 89만 원으로 7.2% 올렸음에도 주가가 반응하지 않자 시장은 조정 폭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고려아연의 공개매수가가 그간 66만 원→75만 원(13.7%), 75만 원→83만 원(10.6%)으로 10%대 올랐다는 점에 비춰보면 높지 않은 수준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법적 리스크에 따른 우려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앞서 MBK는 공개매수를 통한 자사주 확보 및 소각의 배임 소지를 강조하며 최 회장 측의 자사주 매입을 중단시켜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낸 바 있다. 만약 법원이 이 신청을 받아들일 경우 최 회장 측의 고려아연 경영권 유지 시도가 무위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공개매수가 종료되면 고려아연 주가는 이전 수준인 주당 55만 원대로 회귀할 가능성이 큰데 이미 많이 오른 상태에서 주식을 샀다가 낭패를 볼 수 있는 셈이다.
시장에서는 어느 한쪽에 주식을 몰아줄 투자자는 많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런 만큼 MBK파트너스와 고려아연의 공개매수에 나눠 응하는 방법을 택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양측 모두 고려아연은 최소 물량 조건 없이 청약 물량을 모두 사들이기로 한 만큼 먼저 14일 MBK 측 공개매수에 응한 다음 23일 종료되는 최 회장 측 공개매수에도 참여해 차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최 회장 측은 영풍·MBK 측보다 높은 가격을 쓰고도 경영권을 잃을 여지가 있다.
개인투자자의 경우 MBK 측에 응하면 증권거래세 0.35%, 양도소득세 22~27.5%를 내야 하고 고려아연에 응하면 차액의 15.4%를 배당소득세로 내야 한다. 다만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응할 경우 연간 금융소득이 2000만 원을 초과하면 종합소득세 과세 대상이 돼 최대 49.5%의 세율을 적용받는다. 반면 MBK 연합의 공개매수에 응하면 양도차익이 3억 원을 넘을 시 최대 세율이 27.5%다.
국내 기관투자가는 MBK나 고려아연 중 어느 쪽을 택해도 세금 차이가 없어 공개매수가가 높은 고려아연에 응하는 게 유리하다.
관건은 외국인투자가다. 해외 기관은 조세 협약에 따라 MBK 공개매수에 응해도 양도세를 안 내도 되지만 고려아연 공개매수에 응하면 10~22.5%의 배당소득세를 내야 한다. 해외 기관 상당수가 법인을 둔 미국과 싱가포르는 양도세가 0%, 배당소득세는 15% 안팎이다.
해외 기관이 고려아연 지분을 모두 팔 계획이라면 시기가 빠른 MBK에 응하는 게 유리할 수 있지만 지분 일부만 팔고 일부는 보유할 계획이라면 고려아연에 응하는 게 유리할 수 있다. 고려아연은 공개매수로 취득한 자사주를 전량 소각할 계획이라 보유 지분 가치가 높아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영풍정밀은 최 회장이 공개매수 가격을 3만 5000원으로 기존(3만 원) 대비 16.7% 큰 폭 높였지만 청약 물량을 늘리지 않으면서 실망 매물이 쏟아졌다는 분석이다. 영풍정밀은 양측 모두 공개매수로 세금 조건(양도소득세)이 같다. 법률 리스크도 없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공개매수 가격과 청약 신청이 얼마나 받아들여질지만 보고 청약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MBK의 공개매수 가격은 3만 원으로 최 회장 측(3만 5000원)보다 낮지만 매수 예정 물량(43.43%)이 실제 유통 물량 전체에 가까워 사실상 모든 청약 신청 물량을 사들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최 회장의 경우 매수 예정 물량을 추가로 올렸음에도 35%라 유통 물량에 못 미치는 만큼 청약 당첨률은 다소 낮아질 여지가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의 승패는 14일 영풍·MBK 연합의 공개매수가 먼저 종료되면 그 윤곽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