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학부생과 대학원생들을 위한 국가장학금을 수령하고서 의과대학으로 진로를 바꾸는 ‘먹튀족’들로 인해 수년 간 수십억 원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인재 육성을 위한 장학금 제도가 ‘의대 쏠림’ 현상에 기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일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정성국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장학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이공계 장학금 환수 대상자는 136명, 금액은 총 13억3500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아직 상환되지 않은 장학금은 6억 원에 이른다.
한국장학재단은 우수 인재의 이공계 진출을 위해 매학기 등록금과 생활비, 교재비 등을 지원하는 국가우수장학금과 대통령과학장학금을 운영하고 있다. 수혜자는 장학금을 받은 기간만큼 이공계열 산업에서 의무적으로 종사해야 하며, 이를 어길 시 환수절차가 진행된다.
하지만 제도의 취지에 맞지 않게 장학금 수령 뒤 고소득이 보장되는 ‘의치약한(의대·치대·약대·한의대)’로 갈아타는 ‘꼼수’ 사례가 적지 않았다. 최장 4년까지 연체이자 없이 유예가 가능한 제도의 이점을 노려 의대 진학 등을 위한 준비금으로 쓰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5년 내 환수결정자 73명 중 24.7%인 18명이 의대에 진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들이 부정하게 수령한 장학금을 온전히 환수하지 못하면서 애꿎은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이공계지원법상 처음 2년간 지급된 장학금은 환수가 결정돼도 반환의무가 없다. 이로 인해 돌려받지 못한 금액은 최근 5년 간 37억 원에 달했다. 여기에 ‘안 갚고 버티기’에 들어간 장기미납자 10명이 현재 약 7200만원의 장학금을 돌려주지 않고 있다. 이들은 연체이자도 물지 않는 것은 물론, 강제징수도 어려워 받아낼 길이 요원한 상태다.
정성국 국회의원은 “이공계 지원 장학금을 받고 의대입학을 준비하는 등 다른 진로를 선택하는 것은 혈세의 낭비는 물론 정작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의 기회를 박탈한 것”이라며 “장학금제도의 공정운영을 위해서라도 철저하게 환수하고 악용사례를 줄일 수 있도록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