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고의 역사가 만든 문제의식…'언어장벽' 넘어 공감 끌어냈다

[한국문화 르네상스 ] <1> K문학, 변방서 주류로
전쟁·분단·혁명 등 굵직한 사건
한국문학·작가 영감주는 화수분
한강 '시적 문체' 살린 번역도 한몫
'K콘텐츠 원형' 순수문학도 빛발해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 마련된 책마당 행사장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책이 놓여 있다. 김규빈 기자 2024.10.11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책마당 행사장에서 한 시민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책을 읽고 있다. 김규빈 기자 2024.10.11

한강의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에 전 세계의 찬사가 이어지는 가운데 ‘변방’에 머물러 있던 한국 문학이 어떻게 세계 문학의 중심에 설 수 있었는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은 K팝·K드라마·K무비 등이 글로벌 대중문화를 주도해왔지만 순수문학은 주변에 머무르며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국내외 문화계는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깜짝 놀랄 만한 뉴스로 보면서도 한국 문학이 K컬처 성공의 원초적인 힘으로 작용해왔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 중 관객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많은 작품이 소설을 원작으로 탄생했다. 한국 영화 최초로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모스크바영화제에서 고(故) 강수연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아제아제바라아제’도 한강의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남북 분단,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4·3 사건을 비롯한 근현대의 굵직한 사건 등 인고의 역사는 한국 문학과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화수분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문학은 한국 사회를 주도하고 이끌어갔던 원동력이었다. 한국 역사의 굵직한 사건을 소재로 다룬 문인들은 부조리한 역사를 세계에 알리며 다양한 작품을 통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했다.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책마당 행사장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책이 놓여 있다. 김규빈 기자 2024.10.11

노벨 문학상에 소설가 한강…한국 작가 최초 수상 쾌거 (서울=연합뉴스) 소설가 한강이 10일 202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맨부커상을 수상한 2016년 소설 \'흰\' 출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한강. 2024.10.10 [연합뉴스 자료사진] phot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광화문 책마당에서 읽는 한강 소설 <이 기사는 2024년 10월 11일 16시 58분 전에는 제작 목적 외의 용도, 특히 인터넷(포털사이트, 홈페이지 등)에 노출해서는 안됩니다. 엠바고 파기시 전적으로 귀사에 책임이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1일 광화문광장 책마당 행사장에 노벨문학상 한강의 소설책이 놓여 있다. 2024.10.11 xyz@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한강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한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며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며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한강의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등은 광주민주화운동과 제주 4·3 사건 등 한국의 근대사를 다룬다. 과거 리얼리즘 작가들의 어법이 아닌 한림원의 표현대로 ‘강렬한 시적인 언어’로 표현한 점이 오히려 세계인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한강에게 세계적 인지도를 안겨준 ‘채식주의자’마저도 일제 강점과 군사 정권 등으로 인해 내면화된 우리 안의 폭력성을 은유한 것이라 해석이다.


소설가 황석영, 시인 고은 등 사회성 짙은 기성 작가들이 쌓아둔 토양을 발판 삼아 성장한 젊은 작가들이 세계 문단의 흐름에 눈높이를 맞추며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유려하고 개성있는 스타일로 표현해낸 것도 한국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 배경으로 꼽힌다. 어경희 예일대 동아시아어·문학 교수는 “젊은 작가들의 경우 세계 문단의 뚜렷한 경향성인 소수자 의식, 젠더 문제 등에 대해 이미 국제적인 감각을 갖추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인종적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뭉툭한데 이를 또 한국인과 한국계 작가들이 첨예한 감각으로 다루고 있다”고 평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번역의 중요성도 크게 부각되고 있다. 한강의 소설이 맨부커상을 시작으로 노벨상까지 수상하기까지는 영국 번역가 데버라 스미스의 공로가 크다는 진단이 나온다. 봉준호 감독이 오스카 시상식에서 ‘기생충’으로 감독상을 수상할 당시 “1인치라는 자막의 장벽만 넘으면 더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는데 언어는 실제로 오랫동안 한국 문학에 장벽이 됐다. 기라성 같은 한국 작가들의 소설이 해외에 진출해서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이유다. 한강의 대표 소설 ‘채식주의자’의 경우 해외에 처음 출간될 당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았다. 번역가인 스미스가 한글로 쓰인 문장을 영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한국어에서만 쓰이는 독특한 특성을 지키는 데 주력한 덕분이다. ‘형’ ‘언니’ ‘소주’ 등의 단어를 발음 그대로 번역한 것도 소설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형진 숙명여대 영문학부 교수는 “한강의 작품은 번역된 언어가 영어·프랑스어·독일어·스페인어 등 소수에 불과하다”며 “역대 노벨상 수상자의 언어 번역으로는 크게 적은 수준”이라고 짚었다. 어 교수 역시 “이미 해외에도 그간 번역가들의 노력으로 이광수의 ‘무정’, 염상섭의 ‘삼대’ 등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은 거의 다 번역이 됐다”며 “이제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많이 알려야 할 차례”라고 강조했다.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해외 출판 기회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 출판사의 번역 출판 지원 사업 신청 건수는 281건으로 전년(209건) 대비 34% 늘었다. 이는 2019년(97건)과 비교하면 세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영어 번역의 경우 2019~2023년 전체 출간 지원 건수 115건 중 시가 절반이 넘는 56건으로 가장 많았고 소설(45건)이 뒤를 이어 시와 소설의 비중이 90% 이상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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