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소송지휘권 vs 지자체 소송수행권 [안성훈 변호사의 ‘행정법 파보기’]

안성훈 법무법인 법승 변호사

지난 2022년 1월 32년 만에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시행됐다. 지방자치의 수준을 높이는 내용의 개정이었다. 물론 지방자치가 강조된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여전히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지차제)의 사무에 관해 조언하거나 권고하고 나아가 지도할 수 있다. 또 사무의 적정이나 효율을 위해 국가가 지자체에 위임한 사무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지휘·감독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국가의 사무도 아니고 국가가 위임한 사무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도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전반적인 지휘권을 인정하고 있는 분야가 있는데, 바로 ‘행정소송’이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국가소송법)은 행정소송에 관해 국가에 광범위한 지휘권을 부여하고 있고(제6조 제1항) 나아가 행정소송을 소송수행자를 지정·해임할 수도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동조 제2항).


우리 행정법은 전반적으로 국가와 지방에 대한 규율을 이원화하고 있다. △행정조직에 관한 규정 △공무원에 관한 규정 △재정에 관한 규정 △계약에 관한 규정 △보조금 관리에 관한 규정 △공공기관에 관한 규정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국가사무와 지방사무를 나눠 규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특이하게도 소송에 관해서는 국가소송법만 있고, 여기에서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행정청의 행정소송 사무까지 규율하고 있다. 그 이유가 명시적으로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우리의 지방자치는 그간 형식적이었고 중앙집권적이었으며 나아가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한 ‘하급행정청’의 소송수행 역량에 대한 신뢰가 적었다는 설명이 있기도 하다. 한편 지자체를 당사자로 하는 일반 민사소송은 규율범위에도 없어서 지자체는 민사소송을 일반 민사절차에 따라 수행한다.


국가의 소송지휘권은 주로 소송의 존폐가 문제될 때 등장한다. 소송을 먼저 시작하려 하거나(제소 결정), 소송을 끝내거나 계속 진행하려 할 때(조정권고안 수용 여부 및 상소 여부 결정) 등이 그때다. 즉, 지자체는 자신의 사무와 관련해 행정소송의 가장 중요한 행위를 하려 할 때마다 국가의 지휘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받아들이기 어색한 문제들이 몇 가지 발생하고 그 필요성에도 의문이 생긴다.


먼저 자치권 행사와 충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지자체는 고유사무에 관해 독자적으로 자치입법을 하고 독자적인 정책적·행정적 의사결정을 한다. 이 같은 의사 결정들에 관해 불복하는 당사자들과 행정쟁송을 겪게 될 수 있다. 대개 재량범위 내에서 어떤 결정을 했느냐에 관해 문제되는 경우가 많기에 법원은 행정소송법이 조정 제도를 명시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조정과 유사한 조정권고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법원이 재량 범위 내에서의 합리적인 안을 제시하고 피고가 그에 부합하는 처분을 하는 대신 원고는 소를 취하하도록 하는 것이다. 행정청은 법원의 조정권고를 받아 재고의 계기를 얻게 되고 그 제안이 타당하다고 판단하면 그에 따라 변경 처분을 하게 된다. 이 같은 변경 처분은 말 그대로 지자체장 등 재량 내의 결정이고, 더구나 법원의 의견에 따른 것이므로 그 합리성도 인정될만하다. 그런데 여기서 국가의 소송지휘가 어색한 문제를 발생시킨다. 원고와 피고가 모두 조정권고안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에 이와 다른 견해에서 ‘조정원고안 불수용’이라는 소송지휘가 내려오면 피고인 지자체장은 자신의 정책적·행정적 판단에도 불구하고 부득이 소송을 계속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상소의 제기·포기 등의 경우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정책적·행정적 판단과 소송진행 실익 및 위험부담에 대한 지자체장 등 나름대로의 검토와 판단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이와 다른 견해에 따라 지휘를 한다면 그 지휘를 따라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해충돌의 문제도 있다. 국가와 지자체는 서로 서로에 대해 행정권한을 행사하는 상대방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상호 간 행정처분의 주체와 객체의 지위에서 항고소송 당사자가 될 수 있다(대법원 2010.3.11. 선고 2009두23129 판결 참조). 대립당사자가 자신의 이익을 두고 다투는 소송에서 일방 당사자가 반대 당사자를 지휘한다는 것은 그 구조 자체가 어색하다. 나아가 복수의 지자체가 다투는 소송의 경우에는 하나의 지휘기관이 대립당사자를 모두 지휘하는 것이 되어 이 또한 어색한 상황이 발생한다.


지방자치단체의 소송 역량도 점차 개선되고 있어서 포괄적인 소송 지휘의 필요성은 점점 적어지고 있다. 특히 많은 지자체에서 직접 변호사를 채용해 송무를 수행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기본적인 소송지식의 미숙지로 발생하는 소송수행 해태는 걱정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한편, 소송지휘라고 해도 서면 작성을 지원한다든지 하는 실질적 지원 기능이 크기보다는 소송 진행 상황을 보고 받고 주요 사항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 관여하는 결과만 되므로 오히려 신속한 의사결정을 어렵게 하는 등 소송에 관한 행정적 비효율을 초래하는 상황도 많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지자체의 독립성이 뚜렷하게 인식되지 않던 시절과 달리 이제 지방의회 의원과 지자체장은 지방선거라는 별도의 선거를 거쳐 민의에 따라 선출된 지가 벌써 오래됐다. 이들은 법령에서 부여한 권한에 따라 자치입법과 자치행정을 수행한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지방자치법은 이들의 실질적인 자치분권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지자체가 고유사무에 관해 의사결정을 하는 과정에 국가가 개입해 지휘한다는 것은 점차 더욱 어색한 일이 될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행정소송에 관한 국가의 일반적 지휘에서 벗어나 지자체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새로운 규율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