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위기의 반면교사들… 日 최초 빅테크 도시바의 몰락 [줌컴퍼니]

몰락 기업의 역사 <1> 도시바
일본 전자업계 혁신 이끌었지만
파벌싸움, 관료주의, 거짓말로
알짜 사업 매각 뒤 상장 폐지


요즘 재계의 최두 화두는 삼성전자입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삼성의 독주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많았지만 최근엔 분위기가 확 달라졌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삼성에 정말 무슨일이 생긴 것 아니냐"는 겁니다.


이는 국가경제에 미치는 삼성의 영향력에서 시작된 의문입니다. 삼성이 납부하는 법인세(세수)는 물론이고 고용, 투자, 수출 등이 모두 국가 경제 전반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기에 속 시원한 대답을 내놓기는 어렵습니다. 서울경제신문 줌컴퍼니는 이에 대한 대답 대신 삼성보다 위대했지만 몰락하고 말았던 해외 기업의 사례를 집중 조명해보겠습니다.



도시바 일본 사옥 전경. AP연합뉴스

세계 최고 혁신기업은 왜 무너졌나, 도시바


도시바는 일본의 천재 발명가로 불렸던 다나카 히사시게가 1875년 설립한 다나카제작소가 모태입니다. 이후 1939년 백열전구 제조기업인 하쿠네츠샤와 병합해 도시바가 탄생하게 됩니다. 일본 전기사업의 시초 격인 회사로 볼 수 있습니다.


도시바는 이후 세탁기, TV, 전자레인지, 발전기, 모터 등을 내놓으며 사업영역을 넓혀갔고 1980년대 들어서는 최초의 노트북과 DVD 등을 출시하며 승승장구 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의 일종의 낸드플래시를 최초로 개발한 곳도 바로 도시바입니다. 지금으로 이야기하면 애플과 인텔이 합쳐진 빅테크이자 혁신의 상징이었던 셈입니다. 전자업계의 제왕이었던 일본 소니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가 도시바 입사시험을 쳤다가 떨어졌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삼성과 기술 경쟁에 나섰던 인연도 있습니다. 도시바는 과거 D램 사업에도 진출해 세계 톱 수준으로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16MB D램 개발을 두고 삼성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삼성의 스택(웨이퍼 위에 층을 쌓는 방식)과 반대 방식인 트렌치(웨이퍼를 파내는 방식) 방식을 선택했다가 경쟁에서 밀렸던 아픔을 겪었습니다. 삼성은 이후 미일 반도체 협정 등을 등에 업고 D램 1위로 올라서게 됩니다.



낸드플래시가 탑재된 고성능 SSD. 사진제공=삼성전자

통상 도시바 몰락은 미국 원전 기업인 웨스팅하우스 인수를 시초로 보는 분석이 많습니다. 도시바는 2008년 웨스팅하우스를 시장 가격의 2배 이상인 54억 달러에 인수했으나 이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서 회사 전체가 벼랑 끝에 몰리게 됐기 때문입니다. 이때 발생한 손실이 2조원 규모 사상 최악의 분식회계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내부에서는 웨스팅 하우스보다 더 큰 종양이 이미 도시바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고 꼬집습니다. 바로 관료주의입니다.


일본 언론들의 분석 기사를 살펴 보면 도시바는 1990년대 후반부터 전자(PC)계와 인프라(원자력·에너지)계로 나눠 심각한 파벌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고 합니다.


도시바의 비극은 특히 인프라계가 실권을 장악한 이후 더 심각해졌습니다. 2020년대 도시바 구원투수로 영입된 시마다 시로 CEO가 "나 이전 경영진은 디지털이 뭔지도 몰랐다"고 일갈했을 정도입니다.


기술을 잘 모르는 수뇌부, 어느 줄에 서느냐가 운명을 결정하는 내부 정치 싸움. 이런 환경에서는 관료주의라는 독버섯이 자라나게 됩니다. 자율적인 토론 문화 대신 상명하복이 당연해지고 인사 때마다 소위 '라인'이 달라지면서 조직의 목표가 달라지는 일이 도시바에서 상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자연히 솔직한 내부 반성도 사라져 갔습니다. 도시바가 2010년대 내세운 '2017년 원전 매출 1조엔' 같은 구호가 이런 사례입니다. 이미 내부에서는 상처가 곪아가고 있는데도 외부에는 그럴듯한 장밋빛 목표만 내세우면서 고객과 투자자를 모두 속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도시바 경영진이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시바를 살리겠다고 투입된 투자펀드들도 도시바의 몰락을 부채질 했습니다. 도시바는 자본잠식에 상폐 위기까지 겹치자 2017년 투자펀드들을 대상으로 증자를 실시하면서 일단 위기를 넘기는 전략을 구사했습니다. 하지만 이 펀드들은 회사를 분할하겠다는 도시바 자구안에 "기업 가치가 훼손된다"며 사사건건 방해했고 도리어 주주환원을 강화하라고 압박했습니다. 차라리 정부가 표면에 직접 나서 구조조정을 집도했다면 사정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도시바는 이후 낸드플래시, 원전기업, 의료기기 사업부 등을 차례로 매각한 뒤 지난해 말 도쿄증시에서 상장폐지 됐습니다. 일본의 빅테크 거인 도시바가 다시 부활할 수 있을지, 전세계가 주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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