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 계약서 없이 8년 간 일하던 아나운서가 계약서를 처음 쓴 지 1년 5개월 만에 계약 종료를 통보한 한국교육방송(EBS)의 조치가 부당 해고에 해당한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7부(구회근 배상원 최다은 부장판사)는 EBS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해고 구제 재심 판정 취소 소송을 1심과 동일하게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아나운서 A씨는 2012년 4월부터 매주 월∼금요일 방송하는 EBS 저녁 뉴스 진행자로 일했다. 출연 계약서 없이 8년 간 일하다 2020년 3월에야 계약서를 처음 썼고, EBS는 이 계약서에 명시된 날짜를 근거로 2021년 8월 계약 기간이 만료됐다며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그러자 A씨는 부당 해고에 해당한다며 경기지방노동위에 구제 신청을 했고, 지노위는 "A씨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며 출연 계약 종료는 해고의 서면 통지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위법하다"고 A씨의 손을 들어줬다.
EBS는 중앙노동위에 신청한 재심도 기각되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2월 1심도 "A씨는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EBS에 근로를 제공했으므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노동위원회의 판단이 맞다고 판결했다.
1심은 A씨가 처음 일한 후 2년이 지난 2014년 2월부터 무기 계약직으로 간주되며, 2020년 계약서를 작성했다고 하더라도 불안정한 지위인 유기 계약직으로 전환됐다고 볼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EBS는 A씨에게 업무 수행과 관련해 지휘·감독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뉴스 진행 시간을 지정하며 '클로징 멘트를 하지 말아라', '시스루 의상을 입지 말아라'는 등 매우 구체적인 지시를 했다는 이유로 인정되지 않았다.
EBS는 A씨가 자사 방송 아나운서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는 겸직을 했다는 주장도 제기했지만 법원은 그 중 상당 수가 EBS 측의 요구에 따른 각종 행사 진행 업무였고 나머지는 뉴스 진행 업무에 지장이 없는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판단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러한 1심 판단에 EBS는 불복해 항소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고가 주장하는 사유는 1심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고, 추가로 제출된 증거를 포함해 살펴보더라도 원고의 주장을 배척한 1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1심의 판단을 인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