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좋아야 경제가 산다’

기고-박강수 서울 마포구청장
마포로드(MapoRoad), 골목상권에 새 힘

박강수 서울 마포구청장

한국인 밥상에 빼놓을 수 없는 후추와 깨의 공통점은 둘 다 실크로드를 건너왔다는 것이다. 제지술과 금속공예 등 동서양의 예술, 건축, 철학도 마찬가지다. 무역 교통로 실크로드는 단순한 ‘길’을 넘어 세계 문명의 가교가 됐다. 이것은 길이 가진 강한 생명력 때문이다. 물길 닿는 곳마다 싹이 돋듯 길을 따라 사람, 물자가 모이며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다. 물화집산의 포구가 발달했던 마포 역시 예로부터 전국의 배가 한강 물길을 따라 모여들며 사회·경제·문화를 이끈 유구한 역사가 있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마포구는 ‘길’로 인해 또 한 번 새롭게 태어났다. 임대료 상승과 청년인구 감소, 코로나 악재까지 더해져 내리막을 걷던 홍대 관광특구에 마포구는 지난해 예산 4억으로 ‘레드로드’라는 새로운 길을 조성했다. 낡은 시설물과 버스킹 존을 정비하고 24시간 개방화장실 등 편의시설을 대대적으로 확충했다. 레드로드 페스티벌, 스트리트 댄스 대회, 비보잉 축제 등 세계인들의 눈을 사로잡을 콘텐츠도 계속해서 선보였다.


그 결과 기적이 일어났다. 조성 전과 비교해 방문객 수가 4배 이상 증가했고 7개 올리브영 매출도 409% 급증했다. 대한민국 대표 상권인 명동 매장이 같은 기간 167% 증가에 그친 것과 비교하면 더 놀랍다. 강렬한 색과 디자인으로 재탄생한 레드로드는 유튜브·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에 능동적인 잘파세대(Z+알파 세대)에 적중해 20대가 주말 외식을 위해 찾는 장소 1위로 조사됐다. 4억으로 도시를 바꾼 셈이다.


레드로드 후발주자로 합정동에 새로 조성한 ‘하늘길’도 서울 특화상권 중 분기 매출 성장 1위를 기록하며 눈에 띄는 출발을 보였다. 연남동 ‘끼리끼리길’, 도화동 ‘꽃길’, 마라토너 서윤복을 기리는 ‘서윤복길’에 이르기까지 골목상권과 지역 특색을 반영한 마포로드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마포구는 마포로드와 각 골목상권을 연결하는 ‘마포순환열차버스’도 준비 중이다. 저렴한 요금으로 하루종일 순환 노선 어디서든 타고 내릴 수 있어 환승이나 주차 걱정 없이 골목 구석구석을 여행할 수 있다. 이를테면 레드로드에서 쇼핑하고 하늘길 이색 카페를 갔다가, 저녁에는 용강동 먹자골목에서 맛있는 주물럭을 즐기는 것이다. 마포로드가 막힌 상권을 뚫는 동맥(動脈)이라면, 순환열차버스는 각 동맥을 잇고 양분을 전달하는 실핏줄인 셈이다.


지난해 세간의 우려 속에 첫 삽을 떴던 레드로드처럼 기원전 2세기 맨 처음 실크로드를 걸었던 누군가의 도전을 세상은 무모하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발자국이 뒤로 숱한 행렬을 만들고 세계 문화와 경제를 움직인 역사적 배경이 됐다. 각양각색 마포로드도 사람·경제·문화가 계속해서 탄생하고 발전을 거듭하는 ‘상권 화수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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