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점프' 정의선 4년…현대모비스는 50년 만에 미쓰비시에 '전동화 역수출'[biz-플러스]

전기차 '충전제어장치' 공급계약
정의선號 4년…글로벌 톱티어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올해1월 2024년 현대차그룹 신년회에 참석해 ‘한결같고 끊임없는 변화를 통한 지속 성장’이라는 새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사진 제공=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 체제 이후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이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지 참으로 궁금하다.”


14일로 취임 4년을 맞는,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을 향한 재계의 평가다. 실제 정 회장은 취임 3년 만인 지난해 세계 5위던 현대차그룹을 세계 3위까지 끌어올렸다. 올해는 미국 제너럴모터스(GM)와 ‘포괄적 협력’을 위한 전략적 제휴를 하고 구글 웨이모와 로보택시 사업에 뛰어들며 미래 모빌리티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이런 와중에 현대차그룹은 창립 초기 미쓰비시에게 기술지원을 받은 지 50여 년 만에 전동화 부품을 역수출하는 쾌거도 이뤘다. 역사를 다시 써 가고 있는 것이다.


13일 일본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모비스는 전동화 핵심 부품인 통합충전제어장치(ICCU)를 미쓰비시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미쓰비시가 현대모비스로부터 전동화 부품을 공급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모비스가 공급하는 ICCU는 양방향 7㎾ 배터리충전장치(OBC)와 3㎾ 직류변환장치(LDC)가 혼합된 제품이다. 충전과 전력 변환 기능을 통합할 수 있는 이 부품은 차량의 전력 에너지를 외부에 공급하는 V2L 기능을 가능하게 한다. V2L은 캠핑이나 재난 상황 등에 대비할 수 있는 기능이다. 미쓰비시는 현대모비스의 부품을 이용하면 전체 부품 수는 줄어들고 성능은 향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쓰비시와의 계약은 50년 만에 완전히 뒤바뀐 두 회사의 위치를 보여준다. 현대차는 1975년 미쓰비시에 로열티를 지불하고 엔진 등의 기술을 받아서 첫 독자 모델인 포니를 만들었다. 1991년 독자 엔진을 개발하기 전까지 현대차는 미쓰비시의 기술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빌리티 시대가 도래하자 미쓰비시가 현대차그룹의 전동화 부품을 받아서 전기차를 생산하게 됐다.


업계는 현대모비스가 미쓰비시를 시작으로 다른 일본 완성차 업체에 전동화 부품을 공급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미쓰비시는 혼다·닛산과 함께 ‘전기차 동맹’을 맺고 공동 기술 개발과 플랫폼 공유 등을 추진하고 있다. 미쓰비시 전기차에 현대모비스의 기술이 들어가면 혼다와 닛산도 이용할 여지가 생긴다.


현대모비스는 미쓰비시와의 공급 계약에 대해 “고객사와 관련된 수주, 추진 현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밝혔다.


정 회장이 미쓰비시에 전동화 부품을 수출하며 모빌리티 시장에서 톱티어로 올라선 현대차그룹의 위상을 재확인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박철완 서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일본 기업들이 배터리 전기차 분야에서 다소 뒤처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수십 년 전 미쓰비시에 엔진 등 기술을 배웠던 현대차가 역으로 수출한다는 것에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끝없이 변화…수익률 1위 오른 현대차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1월 2024년 현대차그룹 신년회에 참석해 기아 오토랜드 광명 전기차 전용공장을 둘러보고 있다.서울경제DB

4년 차를 맞은 정 회장의 경영 철학은 취임사와 네 번의 신년사에 담겨 있다. 정 회장은 취임 이래 고객(38회)과 미래(32회), 성장(30회)을 수십 차례 언급하며 강조해왔다. 특히 올해 신년사에서는 임직원들에게 “끊임없는 변화야말로 혁신의 열쇠”라고 역설했다. 정 회장은 “이 순간에도 세상은 바뀌고 경쟁자들은 달리고 있다”면서 “고통 없이는 체질을 개선할 수 없다”며 혁신을 주문했다.


정 회장의 리더십으로 글로벌 3위에 오른 현대차그룹은 올해도 역대 최고의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와 기아의 상반기 영업이익률은 10.7%로 글로벌 1위 도요타(10.6%), 2위 폭스바겐(6.3%)을 누르고 완성차 업계 1위를 기록했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도 신용평가 등급을 올리며 현대차그룹의 경쟁력에 답했다.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는 올해 일제히 현대차·기아의 신용등급을 A로 상향했다. 신용등급 A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는 현대차·기아, 메르세데스벤츠, 도요타와 혼다뿐이다.


현대차그룹의 최근 수익성 개선은 제네시스와 기아가 이끌고 있다. 두 브랜드의 공통점은 모두 정 회장의 손길을 거쳤다는 점이다. 정 회장은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 전 과정을 이끌었다. 그룹 총수에 오르기 전 기아 대표를 지내며 비인기 모델을 단종하고 시장 수요에 맞춰 레저용차량(RV) 중심으로의 라인업 재편을 주도했다.


정 회장의 주도 아래 판매 모델들의 라인업을 조정한 것도 역대 최대 성과에 기여했다. 현대차의 올해 상반기 판매 중 RV·제네시스 비중은 전체의 60% 이상이었고 기아는 같은 기간 주요 시장인 미국에서 RV 판매 비중 78%를 기록했다.


압도적 전기차 기술로 모빌리티 주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1월 2024년 현대차그룹 신년회에 참석해 '한결같고 끊임없는 변화를 통한 지속 성장'이라는 새해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서울경제DB

정 회장은 공격적인 외연 확장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5N, 기아의 양산형 EV 시리즈를 내놓으며 세계 최고의 전기차 기술력을 증명했다. 정 회장이 모빌리티 시대를 대비해 밀어붙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이 제 역할을 해낸 것이다. 그 결과 현대차는 전기차 분야에서 추격자인 ‘패스트팔로어’에서 시장을 주도하는 ‘퍼스트무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에도 늘어나는 판매량이 성과를 입증한다. 현대차그룹의 올해 상반기 미국 전기차 판매량은 6만 1883대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60.9%가 증가했다. 미국 내 전기차 시장점유율은 두 자릿수로 뛰어 테슬라에 이어 톱2에 올랐다.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을 메울 하이브리드차량(HEV) 시장에서도 앞서가고 있다. 올해 상반기 그룹의 글로벌 HEV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5.6% 상승한 약 49만 대로 역대 최대 실적이다. 올해 말까지 HEV 판매 100만 대 고지를 처음으로 넘어설 것으로 관측된다.


현대차그룹은 압도적인 전동화 기술을 앞세워 9월에는 미국 GM과 포괄적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 이달에는 구글 웨이모에 로보택시를 공급하기로 했다. 현대차가 ‘합종연횡’을 하며 업계의 판도를 흔들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는 내년 고성능 전기·전자 아키텍처를 적용한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페이스카(Pace Car)를 공개할 예정이다.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기능을 통한 새 모빌리티 서비스에 진출하는 전략이다. 현대차그룹은 전동화에 그치지 않고 자율주행 로봇, 미래항공교통(AAM)을 위한 차세대 기체까지 개발하고 있다.


"공동체에 기여"…양궁·소방관 지원


정의선(오른쪽 두번째)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7월 2024 파리올림픽 남자양궁 단체전 우승 직후 김우진, 이우석, 김제덕 선수를 축하하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서울경제DB

2024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은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뤘다. 양궁 로봇까지 만들어 선수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한 정 회장은 한국 양궁팀의 ‘숨은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기업의 선한 영향력은 정 회장이 꾸준히 강조해온 그룹의 사명이다.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역량과 전문성을 적극 활용해 우리 사회의 공동체와 구성원들을 위한 책임감 있는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대차는 소방관들의 과로와 탈진을 예방하고 회복을 돕는 소방관 회복지원버스를 8대 지원했고 2대를 추가로 기증할 계획이다. 또 국군 의무사령부와 ‘부상 군인 재활 지원’ 협약을 체결하고 보행 재활 로봇을 국군 수도병원 재활치료실에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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