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중국은 지난 6일로 수교 75주년을 맞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서로 축전을 교환했지만 북한은 평소 쓰던 ‘친애하는’, ‘존경하는’ 시진핑 총서기라는 수식어를 빼고, ‘피로써 지켜낸 사회주의’라는 표현도 없앴다. 그리고 11일 평양에서 열린 북한의 당 창건 79주년 기념식에서는 주북한 러시아 대사를 ‘국가수반의 개인 초청 손님’으로 언급하면서 친밀감을 과시했지만, 주북한 중국 대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북중 수교 75주년을 맞아 10년 전 이미 완공한 신압록강대교의 개통식 역시 전망과는 달리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은 북중 양국 정상이 5번이나 만나 사회주의 연대를 과시했지만 도대체 무슨 성과가 있었는지에 대해 불만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신의주와 중국의 단둥 사이 기존 철도 교역도 늘지 않고 있는데 새로운 대교 개통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러한 북한의 중국 홀대 현상이나 이상기류는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다. 최근 사업차 평양을 다녀온 중국 기업가들의 전언에 의하면 북중 관계가 생각보다 간단치 않고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는 분위기가 확연하다. 중국에 대한 북한의 불만을 요약하면 중국이 상무부를 동원해 유엔안보리의 대북 제재를 엄격하게 집행하면서 북한 경제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고 1334km에 달하는 북중 국경에서 비공식적 무역이나 밀수조차 단속이 늘고 있다. 또 10만 명이나 되는 회색지대의 북한 노동자에 법의 잣대를 대면서 북한의 돈줄을 막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러시아와 무기 거래, 신규 노동자 파견을 통해 군사·경제협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중국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95%에 달하고 무엇보다 공장가동률을 높이기 위한 필수 부품·소재·장비 등은 중국에 묶여있기 때문에 이를 우회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이처럼 북중관계가 약화되는 상황에서 북중러 구도에서 최대한 중국을 분리해 한중 협력을 강화하자는 논의가 일각에서 등장했다. 올해 5월 열린 제9차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중간 고위급 전략대화가 개최됐고 지방정부와 의회 차원에서도 다양한 교류가 이어지면서 얼어붙었던 한중관계에 새로운 모멘텀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러나 북중 관계라는 애증의 역사에 비춰보면 북한과 중국이 ‘헤어질 결심’을 하는 단계는 아니다. 북한은 24년만에 북러관계를 과시하면서 중국과의 협력을 재촉하는 측면이 있고 중국도 협상 판을 키우려는 북한의 도발에 불만이 있으나 공식적으로는 이상기류를 일축하고 협력을 다짐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북중 관계 변화를 활용한 한중 협력을 도모하기 어렵다. 더구나 중국이 북한에 압박을 가해 북한 비핵화 동력을 살리거나 ‘두 개의 적대 국가’와 ‘자유민주적 통일’로 요약되는 남북 관계에서 한국을 지지할 가능성은 없다. 실제로 한미동맹의 지역화 문제, 공급망 협력,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동진과 같은 예민한 사안에서는 한중 모두 유연성을 발휘하기 쉽지 않다. 북한 경제도 코로나 봉쇄, 국제사회의 촘촘한 제재, 그리고 수해 등 자연재해로 인한 삼중고에 직면해 있지만 중국에서는 또 다른 평가도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산 중턱까지 개간하던 ‘뙈기밭’이 산림으로 바뀌고 있고 국제제재로 막힌 상품이 국내에서 유통되고 있다. ‘지방발전 20×10정책(매해 20개 지역에서 공장을 건설하고 10년 내에 완결)’에 필요한 자재공급이 일부 이뤄지고 있고 대도시 아파트 건설 붐도 지속되고 있다. 가공식품과 부식품이 다양화되면서 쌀소비가 줄고 있고 기업 간 품질경쟁도 나타나고 있다. 현재 북한이 치명적 위기로 그리고 그것이 붕괴로 가는 길목에 있다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화는 상대가 있는 법이다. 우리가 중국을 설득해 북한에 건설적 역할을 기대하려면 대만과 북한에 대한 핵심 이익의 상호 존중, 북한의 변화가 가져올 힘의 균형, 신뢰 적자를 개선하는 방안, 가치와 이익을 섞는 외교적 지혜를 함께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중국은 한국보다 미국으로 열린 기회의 창을 열고자 할 것이다. 내년 11월 경주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시진핑 주석의 방한을 못 박고 활용하는 것이 첫 시험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