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글로벌 펀드에 韓기업 공격 빌미 주는꼴"

■ 8개 경제단체 공동 세미나
기존 법체계 뒤흔들고 경영 제한
기업방어에 투자할 돈 소진 우려
무리한 개정보단 감독이 효과적
기업 이사 경영판단 자유 더줘야

도리야마 교이치(오른쪽) 와세다대 교수가 15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논란과 주주이익 보호’ 세미나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경제인협회

정부와 정치권이 추진하고 있는 상법 개정이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들에 우리 기업을 공격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조치가 될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왔다. 상법 개정이 법체계를 흔들고 기업 경영을 옥죄는 것은 물론 기업 지배구조까지 흔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회에는 총 8건의 상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으며 대부분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기업의 이사가 내리는 경영상 결정이 주주의 이익과 배치된다고 판단될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주주의 이익과 충실의무가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정의가 모호해 기업 이사들이 집단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15일 한국경제인협회·한국무역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한국상장회사협의회·코스닥협회 등 8개 경제단체 및 한국기업법학회와 공동으로 세미나를 주최하고 이같이 주장했다. 김창범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은 “이번 상법 개정으로 해외 행동주의 펀드들의 국내 기업이 크게 증가할 수 있다”며 “우리 기업의 투자금으로 쓰여야 할 돈이 소진돼 우리 경제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기조발제를 맡은 도리야마 교이치 일본 와세다대 로스쿨 교수는 “이사와 주주가 법률관계를 맺도록 하는 한국의 상법 개정은 기존 회사법 체계를 흔드는 조치”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의 상법 체계가 사실상 동일하게 구성돼 있다”고 밝히면서 “주식회사의 이사는 회사 측과 법률관계를 맺고 회사에 대해 충실의무를 지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주주 공동의 이익도 구현된다”고 강조했다.


이사가 주주와 법률관계를 맺을 경우 채권단 등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이 침해될 소지가 있고 만약 이사가 제대로 경영을 하지 못해 주주가 손해를 입게 된다면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통해 이익을 구제받을 길도 열려 있다는 게 도리야마 교수의 설명이다.


이어 주제발표에 나선 박준선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상법 개정안 논란에 대해 “우리 법체계(대륙법)와 완전히 다른 영미법계 법리를 우리 회사법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회사와 이사 간 엄격한 위임관계에 근거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인정하기 때문에 이사나 임원·주주에게까지 신뢰의무를 주는 미국 법체계와 상황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통상 미국은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를 인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이사와 주주 간 거래나 회사합병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이를 인정하고 규제로 적용한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강영기 고려대 금융법센터 교수 역시 무리한 상법 개정보다 소수주주와 대주주 간 이해 상충 리스크를 감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분석했다.



김창범(오른쪽 여섯 번째)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과 서성호(〃 일곱 번째) 한국기업법학회장을 비롯한 국내 법학 전문가들이 15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에서 열린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논란과 주주이익 보호’ 세미나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경제인협회

기업 이사의 경영 판단에 더 자유를 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번 상법 개정안은 기업의 경영 활동을 지나치게 옭맨다”며 "이사의 책임을 면제해줄 ‘경영 판단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반면 정준혁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상법에 적시된 이사의 충실의무를 구체화해 ‘주주 전체의 정당한 이익 보호 노력’ ‘환경·사회 등 회사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사항 고려’ 등을 열거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서성호 한국기업법학회 회장은 “기업가의 경영 판단 사안이자 재량에 해당하는 사안을 상법에 명문 규정으로 넣는 것은 사기업의 영리 행위 보장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자 입법 만능주의”라고 반박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