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신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4일 군 수뇌부들과 모여 평양 무인기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고 15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이 자리에서 “강경한 정치군사적 입장”을 표명했다는 사실이 공개된 지 불과 수 시간 뒤인 이날 정오께 북한은 전격적으로 동해선과 경의선의 남북 연결 도로를 폭파했다. 정부는 “비정상적 조치”라며 규탄하는 한편 미국과 함께 군 경계 태세를 강화했다.
김 위원장이 소집한 ‘국방·안전 분야에 관한 협의회’는 리창호 정찰총국장의 종합분석과 리영길 총참모장의 대응 군사행동 계획, 노광철 국방상의 군사기술 장비 현대화 대책, 조춘룡 노동당 군수공업담당 비서의 무장장비 생산 실적, 리창대 국가보위상의 정보작전 상황 보고 등으로 진행됐다. 군과 정보 당국, 대남 공작기관의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인 것으로 이런 형태의 협의회가 북한에서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위원장은 △당면한 군사활동방향 제시 △전쟁 억제력 가동·자위권 행사의 중대한 과업 등을 밝힌 뒤 “당과 공화국 정부의 강경한 정치군사적 입장을 표명했다”고 노동신문은 전했다.
김 위원장의 정확한 발언과 회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날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한국 군부가 도발 행위의 주범이라는 명백한 증거를 확보했다. 도발자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담화를 낸 점을 고려할 때 한국을 겨냥한 대응 수위를 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남북 연결 도로 폭파는 전날 회의의 첫 결과물로 보인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 양쪽에 각각 100여 명 규모의 병력을 투입해 폭파 작업을 했다. 북한군은 도로 남쪽으로 6m 높이의 가림막을 치고 군사분계선 북쪽 10~70m 지점에서 아스팔트 도로를 폭파했으며 파편이 수십m 높이까지 치솟았다. 이성준 합참 공보실장은 “우리 군의 피해는 없고 군사분계선 이남 지역에 대응 사격을 했다”며 “한미 공조하에 감시 경계를 강화하고 만반의 대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북한을 규탄하며 “경의선·동해선 철도·도로는 북한 요청으로 1억 3290만 달러(약 1800억 원)에 달하는 차관 방식의 자재·장비로 건설했다”며 “상환 의무가 여전히 북한에 있고 모든 책임도 북한에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11일 남측이 보낸 무인기가 평양 상공에서 전단을 뿌렸다고 주장한 이후 연일 막말을 쏟아내며 위협의 수위를 높였다. 특히 이날 김 위원장까지 등장해 사안의 위중함을 드러낸 만큼 앞으로 추가 군사 도발 가능성은 충분하다.
다만 최근 북한의 메시지와 의도 등을 종합할 때 북한 역시 극한 충돌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북한은 적극적인 군사행동에 나설 경우 과거 당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를 가동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생소한 형태의 국방협의회를 개최했는데 김 위원장이 상황을 조절하며 관리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북한이 지난해 말 ‘적대적 2국가’를 내세운 뒤 명분 쌓기 행보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번 평양 무인기 사건과 도로 단절 역시 실제 도발보다는 내부 결속의 연장선이라는 견해도 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북 연결 도로 폭파 장면을 주민들에게 공개하며 대남 적개심 고취에 활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4년여 전 개성공단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쇼’를 벌여 선전 도구로 활용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김여정이 전날 무인기 미국 책임론까지 언급하며 재발 방지를 촉구한 것은 군사 충돌을 피하자는 뜻”이라며 “북한은 내부 체제 결속을 이어가며 2국가론에 따른 남북 봉쇄 작업도 계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