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이나 광역시장 및 도지사가 아닌 4명의 기초단체장을 선출하는 10·16 재보궐 선거에 여야 지도부가 명운을 걸고 나섰다. 4곳 지방자치단체의 선거 결과에 따라 선출된 지 두세 달밖에 안 된 여야 대표의 향후 리더십이 중대한 갈림길에 설 수 있어서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텃밭인 부산 금정과 인천 강화에서 모두 승리해야 향후 당정 관계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호남 두 곳(전남 영광·곡성)에서 이겨야 야권 지도자로서 정통성 확보가 가능해진다.
이번 재보선에 사활을 걸다시피 하고 있는 건 여당의 한 대표다. 4월 총선에서 108석으로 개헌·탄핵 저지선을 겨우 확보한 한 대표로서는 여권이 어려운 시기에 당대표로서 역량과 존재감을 확인시켜야 한다. 특히 김건희 여사 문제를 둘러싸고 대통령실과 기 싸움을 벌이는 만큼 재보선 승리는 다음 주초 윤석열 대통령과의 독대에서 제기할 의제들에 힘을 싣는데 필수 조건이다.
최대 승부처는 구청장 보궐선거가 치러진 부산 금정이다. 한 대표는 금정을 여섯 차례나 찾아가 지원 유세를 하며 민심 잡기에 공을 들였다. 윤석열 정부의 낮은 국정 지지도와 야권 단일화라는 변수가 있지만 워낙 ‘보수 우세’ 성향이 강한 곳이어서 꼭 승리를 따내야 한 대표의 입지가 탄탄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만일 금정에서 패한다면 민주당에 정국 주도권을 넘겨주는 것은 물론 당내에서도 ‘책임론’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계파 간 패배 책임 공방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한 대표로서는 본인의 정치생명뿐 아니라 보수 대분열 우려까지 걸린 선거가 됐다. 한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여러분께서 나서 주시면 제가 현장에서 약속드린 것처럼 국민의힘이 금정·강화·곡성을 위해 정말 열심히 일하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민주당의 이 대표 또한 이번 선거가 중요하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당의 ‘심장’ 격인 호남에서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80%가 넘는 득표율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두 번째 연임 민주당 대표가 됐지만 사법 리스크를 안고 있는 이 대표로서는 다음 대선까지 리더십을 유지하려면 호남에서 압도적 지지를 업어야 한다.
특히 조국혁신당·진보당과 3파전을 벌이는 영광군수 재선거에서 다른 야당에 승리를 내준다면 차기 대권 주자로의 정통성마저 위협받을 수 있다. 이 대표도 국회 최고위원회의에서 “투표를 포기하는 것은 주권을 포기하는 것일 뿐 아니라 내 삶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며 투표 참여를 당부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또한 전남 영광·곡성 중 최소 한 곳에서는 군수를 배출해야 총선에서 12석 확보가 그저 운만은 아니었음을 입증할 수 있다.
윤 대통령도 재보선이 최근 당정 갈등의 분수령인 만큼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김 여사 리스크에 명태균 씨 논란까지 휘몰아치는 상황에서 여당이 재보선마저 패할 경우 국정 운영의 동력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여당이 압승을 거둬 한 대표의 입지가 굳어지는 것 또한 김 여사와의 껄끄러운 관계를 생각하면 부담이다. 재보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정 관계는 더욱 꼬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재보선 4곳의 최종 투표율은 53.9%로 이전 재보선보다 높게 나타나 유권자들의 커진 관심이 반영됐다. 지역별로는 전남 영광과 곡성이 70.1%와 64.6%, 인천 강화 58.3%, 부산 금정 47.2%를 각각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