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 환경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속가능성 공시 최종기준안 발표를 앞두고 당국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대선 등 변수가 남은 데다 큰 손 해외 연기금이 강도 높은 공시 기준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투자자와 국내 기업 간 이해상충이 커 지속가능성 공시 최종기준안 발표가 내년 이후로 미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한국회계기준원 등은 지속가능성 관련 재무공시 관련 최종기준 제정을 위한 추가 논의를 진행 중이다. 당초 연내 최종 기준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내년 이후로 연기될 가능성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회계기준원 관계자는 “미국 대선 결과나 일본 공시 기준까지 지켜보자는 의견이 나와 논의 중”이라며 “최종안 발표 시기와 관련해선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최종 안에는 의무 공시 도입 시기와 기업의 가치 사슬에서 발생하는 간접 온실가스 배출량까지 공시해야 한다는 ‘스코프(Scope)3’ 포함 여부 등 핵심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업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기업과 투자자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으나 불확실성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요 해외 투자자들이 5~8월 공시 초안에 대한 의견 수렴 과정에서 강하게 의견을 낸 것도 변수가 되고 있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노르웨이 국부펀드(NBIM)와 네덜란드 연기금(APG) 등을 포함해 미국 캘리포니아교직원연금(CalSTRS),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등 주요 연기금은 예상보다 적극적으로 한국 기업의 지속가능성 공시에 대한 의견을 제기했다.
해외 투자자들은 한국 정부 측에 지속가능성 공시를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수준에 맞춰 한층 강화된 기준 적용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지속 가능성 공시 기준 초안에 따르면 기후 관련 공시를 의무화하되 일부 사항에 대해서는 선택 공시하거나 유예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를 모두 의무 적용하라는 것이다. 또 기업들이 직면한 리스크를 파악하기 위해 측정이 어렵더라도 스코프3 정보를 포함하라는 의견도 냈다.
다만 기업들은 스코프3 측정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과도한 비용과 노력이 소요되고,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를 요구하지 않는 만큼 부담이 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정부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추진 중인 밸류업 성공을 위해선 해외 연기금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NBIM과 APG의 한국 투자 규모는 각각 27조 원, 15조 원으로 전체 운용자산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주요 해외 연기금들이 요구하는 수준을 수용하자니 기업 활동 위축이 우려되고, 이를 무시하면 해외 연기금 투자 확대를 기대할 수 없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의 국내 증시 이탈이 급격히 이뤄지는 만큼 한국 시장에 관심을 보이는 해외 투자자 의견을 무시하기도 힘든 입장이다. 회계기준원 관계자는 “ISSB 등 다른 국제적인 기준과의 국제정합성과 함께 국내 기업의 수용가능성 등을 고려해 최종안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