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첫 투약이 무사히 끝났습니다.” (유선희 전담간호사)
“울렁거리거나 두통이 있진 않으세요?” (이동윤 교수)
지난 15일 오전 11시 45분 서울아산병원 신관 2층 핵의학과 당일치료실. 약물주입펌프의 종료 알람이 울리자 김모(67·남) 씨 곁을 지키던 이동윤 교수와 유선희 전담간호사가 재빠르게 주사 부위와 이상반응 여부를 살폈다. 이동훈 방사선사가 유리병에 들어있던 약제를 펌프에 연결할 수 있도록 주사기 실린더에 소분해 전달한 후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1~2주 정도 메스껍고 식욕이 없거나 입마름 증상이 나타날 수 있어요.” 김씨가 치료 후 주의사항을 듣다 “불편감은 전혀 없고 오히려 혈관이 시원하다”고 말하자 긴장감이 돌던 치료실 분위기는 일순 편안해졌다. 이 교수는 “주사기에 약물이 남지 않도록 생리식염수를 주입하는 중이라 그런 느낌이 들 수 있다”며 당일 오후 5시로 예정된 전신 스캔 촬영 일정을 상기시켰다.
김씨에게 투여한 약은 스위스 제약사 노바티스의 전립선암 혁신치료제 ‘플루빅토’다. 전립선암은 전립선 상피세포에서 합성되는 단백분해효소인 전립선특이막항원(PSMA)이 정상 전립선세포보다 더 많이 발현된다. 플루빅토는 이 PSMA를 표적하는 리간드(PSMA-617)와 세포독성 방사성동위원소 ‘루테튬-177’로 구성된 방사성 리간드 치료제다. 체내 PSMA와 선택적으로 결합해 전립선암 세포에 치료 방사선을 전달함으로써 암세포를 사멸시킨다고 해서 이른바 ‘방사선 미사일 치료’로 불린다.
플루빅토는 항호르몬제와 탁산 기반 항암화학요법에 실패한 거세저항성전립선암(m-CRPC) 환자의 암 진행 및 사망 위험을 60% 감소시켰다는 임상시험 결과를 토대로 2022년 3월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은데 이어 올 5월 말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를 받았다. 방사성의약품으로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국내 첫 테라노스틱스센터를 운영 중인 서울아산병원은 이날부터 난치성 전이암 환자를 대상으로 플루빅토의 본격 처방에 나섰다.
플루빅토는 6주 간격으로 총 6회 투여된다. 일대일 맞춤형 주문 제작되는데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1회 약값이 3700만원 상당이다. 전체 투약 스케줄을 채우려면 약값만 2억 원이 넘으니 의료진 입장에서도 선뜻 얘기를 꺼내기 쉽지 않다.
투여 대상으로 선정되기도 쉽지 않다. PSMA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진단용 방사성의약품을 사용한 전립선암 맞춤 전자방출단층촬영/컴퓨터단층촬영(PET/CT) 검사에서 암세포의 PSMA 과발현이 확인돼야 하기 때문이다. 김씨는 2012년에 처음 전립선암 진단을 받고 항호르몬제와 세포독성항암제를 5~6가지 쓰면서도 재발과 전이를 거듭해 왔다. 현재로선 플루빅토가 유일한 희망이다.
2주 전 김씨의 PET/CT 결과를 보고 플루빅토 주문을 넣은 순간부터 첫 투약이 완료되기까지의 여정은 첩보작전을 방불케 한다. 루테튬-177의 반감기는 6.7일에 불과해 충분한 항암효과가 발현되려면 처방부터 생산·배송·투여 전 과정을 5일 내 진행해야 하는 만큼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다. 김씨가 맞은 약은 스페인의 특수시설에서 생산돼 11일 오후 6시께 항공편에 실렸다. 독일을 경유해 이날 오전 6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한 의약품은 특수운반 차량으로 8시를 넘겨서야 서울아산병원 핵의학과 방사의약실에 도착했다. 당일 오전 김씨의 혈액검사 결과에 문제가 없었기에 예정대로 투약이 이뤄질 수 있었다.
의료진 입장에서도 챙겨야 할 요소가 여러가지라 큰 부담이다. 다행히 첫 투약 후 김씨의 컨디션은 물론 검사 결과는 안정적이었다. 플루빅토 6회 투여 후 김씨의 요로를 막고 있던 암 덩어리가 줄어 신장 배액관(PCN)을 제거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다.
류진숙 서울아산병원 암병원 테라노스틱스센터 소장(핵의학과 교수)은 “여러 분야 전문가들이 한 팀을 이룬 다학제 접근을 통해 개별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 방법을 제공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며 “상대적으로 치료 부작용이 적은 테라노스틱스의 치료 영역이 난치성 전립선암으로 확대된 만큼 환자분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