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는 돌이킬 수 없는 시대의 흐름입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의료 시스템의 일환으로 보편화하고 있고요. 저희들의 역할이나 순기능이 더 많이 조명을 받는 시간이 올 거예요. 지금은 사업 환경이 어렵지만 미래를 믿고 버티고 있어요.”
비대면 진료 플랫폼 사업자의 결집체인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 공동 회장을 맡고 있는 이슬 닥터나우 대외정책 이사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본격화한 비대면 진료가 의료 시스템의 한 축으로 인정받고 환자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22년 초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공공기관을 나와 생소한 스타트업 ‘닥터나우’에 합류해 공공 분야 근무 경험을 살려 정책 이사 및 준법감시인을 맡았다. 정부·국회에 비대면 진료 정책을 제안하고 서비스의 법률적 문제를 점검하는 게 그의 주 업무였다. 원산협 사무국장을 겸하다 올해 초 협의회 공동 회장을 맡았다.
이 회장은 4년 전 코로나 때 탄생한 비대면 진료 플랫폼 생태계의 녹록지 않은 실상부터 전했다. 가장 큰 애로로 꼽은 것은 법제화 미비로 인한 정책 불확실성. “플랫폼 사업자 입장에서는 관련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돼야 하는데 코로나 이후 서비스 대상과 범위가 계속 바뀌고 있어요. 현재의 의료대란이 끝나면 제도가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불안하죠. 기술 투자를 하려 해도 새로운 규제가 등장하고 서비스 범위가 예상과 달라지면 자칫 매몰 비용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진퇴양난에 빠진 느낌이에요.” 이런 까닭에 비대면 진료 플랫폼 29곳 가운데 15곳은 서비스를 중단한 상황이고, 최근 플랫폼 사업자들이 규제가 덜한 일본 등 해외 탈출을 모색하는 연유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비대면 진료는 그동안 네 차례의 제도 변화가 있었다. 팬데믹 기간에는 약 배송을 포함해 전면 시행되다 위기 단계가 낮춰지면서 지난해 6월부터 초진과 약 배송을 제외하는 형태의 시범사업으로 전환됐다. 당초 재진만 허용한 탓에 플랫폼당 비대면 진료 건수가 하루 100건 이하로 뚝 떨어지자 정부는 휴일·야간에 한해 초진을 뒤늦게 허용했다. 올 2월부터 의료대란으로 약 배송을 제외한 비대면 진료가 전면 허용됐다.
“현재의 시범사업은 비대면 진료의 취지가 퇴색됐습니다. 집에서 비대면 진료를 받고도 약을 탈 때는 약국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데 ‘이게 비대면 진료인가’ 하는 원성을 듣고 있습니다. 플랫폼을 이용하는 환자의 99%는 감기 몸살, 복통, 알레르기 같은 경증 환자입니다. 조제약을 받지 않으면 비대면 진료 자체의 효용성이 떨어지는데 야간과 휴일에는 약국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책의 국민적 지지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 회장은 “시범사업은 법제화를 전제로 사전에 테스트한다는 의미가 있는 만큼 다양한 문호를 열어두고 여러 방안을 점검하는 게 합리적”이라며 “예컨대 야간·휴일에 한해 약 배송을 허용하거나 신용카드를 수령할 때처럼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는 방안 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해외의 규제 실태에 대해서는 “주요 선진국(G7) 가운데 이탈리아를 제외한 6개국은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고 약 배송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과 터키만 불허하고 있다”며 “기준의 차이를 고려하더라도 선진국에 비해 규제의 강도가 강하다”고 전했다.
의료대란으로 비대면 진료의 법제화 논의가 사실상 중단된 것에 대해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 회장은 “비대면 진료는 21대 대선 때 여야 정치권의 공통 공약”이라며 “정부와 의료계의 대화가 끊기다 보니 제도화를 위한 논의도, 시범사업 보완 논의도 의정 갈등에 휩쓸려버렸다”고 토로했다. 그는 “의약계는 비대면 진료가 정착되면 환자를 빼앗길까 봐 걱정하는 것 같다”면서 “하지만 플랫폼은 환자와 의사·약사를 연결할 뿐 의료와 약 조제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므로 협력과 상생 모델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비대면 진료는 문을 여는 젊은 의사와 약사에게 기회의 사다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