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경기도 현대자동차그룹 의왕연구소. 도심항공교통(UAM) 자동 정렬 시스템이 작동하자 동체가 13m의 거대한 날개 사이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이저 추적기는 실시간으로 동체와 날개의 위치를 파악했고 시스템은 열두 개의 축을 동시에 제어하며 미세하게 정렬을 끝마쳤다. 시스템의 정밀도는 1㎛(마이크로미터) 수준이다. 수작업으로 3~5일 소요되던 과정을 몇 시간 수준으로 단축할 수 있다.
이동호 현대차그룹 책임연구원은 “UAM은 차량 대비 10~100배가량의 조립 정밀도를 요구한다”며 “UAM 자동 정렬 시스템은 품질의 균일성을 높일 뿐 아니라 맨아워를 크게 낮출 수 있어 원가 절감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소프트웨어중심공장(SDF) 전환을 위한 기술 전시회인 ‘이포레스트 테크데이 2024’를 개최하고 200여 개의 혁신 기술을 공개했다. 올해로 5회 차를 맞은 이포레스트 테크데이가 외부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모비스·현대로템·현대위아 등 6개 계열사가 참여했다.
SDF는 기존 수작업으로 이뤄지던 과정을 소프트웨어 기반으로 개편하며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디지털 트윈을 활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공장 설계를 최적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제품의 생산과 검사 등 생산 과정 전반에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는 방식이다. 기존 공장에 비해 30% 이상의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것이 현대차그룹 측 설명이다. SDF는 현대차그룹의 신공장에 우선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디지털 트윈을 기반으로 한 항공 물류 지능화 시스템은 SDF의 대표적인 기술이다. 디지털 트윈을 이용해 일반 택배 크기부터 1톤이 넘는 중장비까지 다양한 물품을 자동으로 계측하며 경유지, 혼입 금지 물품 등 수십여 가지의 기준에 맞춰 적재한다. 실제 현대차그룹이 대한항공의 KE313편을 대상으로 유효성을 검증한 결과 적재율이 50%에서 80%로 늘어났다. 물류 지능화 시스템은 광명 신공장에도 적용될 예정이다.
크고 정형화된 부품에만 적용됐던 자동화 기술은 작고 비정형화된 부품으로 확대된다. 호스 조립 자동화 기술이 적용된 로봇 팔은 십여 ㎝에 불과한 호스를 인식하고 ‘피킹 포인트’를 찾아 조립하기 시작했다. 세 손가락을 치켜든 로봇 팔은 사람이 조립하는 것처럼 아무렇게 놓인 호스를 180도 돌려가며 기존 엔진에 끼워 넣었다. 현대차그룹은 딥러닝을 기반으로 볼트와 너트 등 더욱 작은 부품을 인식하고 조립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자동화 시스템은 제품을 검사하는 과정에도 확대 적용된다. 프레스 인공지능(AI) 영상 분석 솔루션은 자동차 패널의 균열이나 구멍 유무를 전수조사할 수 있는 기술이다. 기존까지는 10% 수준의 샘플링으로 오류를 점검했고 육안으로 판단했던 만큼 사각지대가 존재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비전 카메라가 패널을 수초간 인식하자 연결된 화면에는 크랙과 홀이 인식돼 표기됐다.
물류로봇(AMR) 주행 제어 내재화 기술도 눈에 띄었다. 로봇 활용에 필요한 제어 및 관제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을 내재화한 기술로 기존 전진 및 직진 이동만 가능하던 로봇을 곡선 주행도 가능하게 변경했다. AMR은 이날 현장에서도 중량물을 올린 채 매끄럽게 짐을 옮겼다. 위치 정밀도는 5㎜이며 주변에 사람이 감지될 경우 감속해 안전사고를 예방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해당 기술은 내년 4월까지 개발한 후 2026년 4월 이후 전체 공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현재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에 100대, 북미 공장에 300대가량 배치된 상태다.
현대차그룹은 이포레스트를 통해 자동화 기술 및 인간 친화적인 스마트 기술을 도입하고 모빌리티 산업 전체를 고도화할 방침이다. 이포레스트의 첫 글자 ‘E’에는 보다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모빌리티 산업 환경 전체의 진보를 달성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재민 현대차그룹 이포레스트센터 상무는 “작업자의 노하우에 기반해 이뤄진 작업들을 데이터화해 수집하고 분석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것”이라며 “제조 환경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연결해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자율 제조 산업 발전을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