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한 사람을 향한 손글씨, 봉투 속에 봉인한 내밀함. 실시간 안부가 아닌 시차를 둔 안부.”
‘구의 증명’ 역주행 신드롬의 주인공 소설가 최진영이 24절기가 바뀔 때마다 보낸 편지들이 하나의 산문집으로 돌아왔다.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제주의 카페 ‘무한의 서’를 찾는 고객들을 위해 시작한 일이 하나의 책이 됐다.
최진영은 22일 열린 산문집 ‘어떤 비밀(난다 펴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소설과는 달리 산문집을 세상에 내보이는 일이 독자들에게 선물을 드리는 마음”이라며 “편지 형식의 글을 실제로 밀봉해서 봉투에 담아 드리는 마음으로 전한다”고 말했다. 2006년 ‘실천문학’으로 등단해 19년차 소설가가 됐지만 왕성하게 소설 집필을 하면서도 산문을 내놓을 일이 좀처럼 없었다.
작가의 편지에서는 현재를 이루고 있는 사랑의 감정이 여러 번 표현된다. 그가 제일 아끼는 편지 중 하나인 ‘입하(신록이 일기 시작하는 5월 초)’에서는 ‘폭발하기 직전의 용암 같은 사랑이자 최초의 사랑’인 엄마 귀순에 대한 사랑이 등장한다. 한때는 감당하기 버거워 사랑일리 없다고 부정했지만 이제는 그 무거움이 자신의 무게중심이 됐다는 사실을 인식한다.
대설 때 쓴 ‘나의 가장 오래된 사람’에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을 하던 아빠와 바빴던 엄마를 대신해 자신의 곁을 지켜준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부터 받은 사랑을 두고 ‘가장 큰 사람과 가장 작은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걷는다’고 표현한다.
‘구의 증명(2015)’을 쓰기 시작할 무렵 연애를 시작했던 지금의 남편에게 애틋함을 표하는 편지는 마지막 장인 ‘오늘은 울고 내일은 올리브유를 사자’에 담겼다. 두 사람은 최 작가가 갓 대학을 졸업할 무렵 상대는 중학교 3학년이 됐을 무렵 처음 만난 뒤 십여년 전 다시 만나 사랑을 키웠다. 사랑하는 연인의 죽음 이후 상실의 감정을 담은 소설 ‘구의 증명’은 2015년 출간 당시만 해도 8000부 가량 팔리는 데 그쳤다. 팬데믹 이후 20만부가 팔리며 전무후무한 역주행 신드롬의 주인공이 됐다. 이를 두고 최 작가는 “결국 사람들은 사랑이 뻔하고 볼만큼 봤다고 생각해도 사랑을 원하는 마음 때문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그는 “산문집 ‘어떤 비밀’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한 나의 마음”이라며 “보내는 순간 상대에게 가는 게 편지”라고 말했다. 이어 “독자들도 한 번에 다 읽기 보다는 곁에 두고 일 년에 걸쳐 천천히 읽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그는 “겨울을 좋아하지만 사실 모든 계절을 좋아한다”며 “같은 날씨와 같은 하루는 단 하루도 없다는 것을 늘 생각하며 모든 날에 대한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