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몸집보다 신뢰 회복이 먼저다

박지수 금융부 기자

“책임을 통감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이석준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은 최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올해 발생한 잇단 금융 사고에 대해 연신 고개를 숙였다. 이석용 NH농협은행장도 이날 “노력했지만 많이 부족했다”며 사실상 내부통제 실패를 인정했다. 이 회장은 거듭 사과하면서 임직원의 윤리의식 개선을 위한 ‘NH금융윤리자격증’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농협은행의 최근 이슈를 보면 ‘서민과 온기를 나누는 따뜻한 금융기관’이라는 슬로건이 무색하다. 농협은행이 올해 수시 공시를 통해 밝힌 금융 사고만 다섯 건에 달한다. 3월 109억 원 규모의 부당대출 사고를 기점으로 5월에는 51억 원 규모의 공문서 위조 사건과 10억 원 규모의 초과 대출 사건도 드러났다. 8월에는 서울시 명동 소재의 영업점에서 직원이 지인 명의로 부당 대출을 일으키는 117억 원 규모의 금융 사고가 발생했다. 이달에는 140억 원의 부동산담보대출 이상거래까지 적발돼 올해 확인된 금융 사고 규모는 총 427억 원에 달한다. 최근 5년간 발생한 10억 원 이상 금융 사고 6건 가운데 4건이 올해 발생했고 사고 금액도 전체의 80% 수준이다.


연이은 금융 사고에 안팎으로 뒤숭숭한 가운데 농협은행은 이달 21일 “2025년까지 자산관리(WM) 특화 점포를 전국 100개소까지 확장하겠다”고 밝혔다. 올해까지 69개소를 열고 내년 중 31개소를 추가해 WM 사업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WM에 대해 “단순한 수익 사업이 아닌 평생 고객을 확보하는 주요 사업”이라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농협은행의 이러한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잇단 크고 작은 금융 사고가 터지면서 금융사의 근본적인 가치인 ‘고객 신뢰’가 통째로 흔들렸기 때문이다. 고객의 ‘돈’을 관리하는 업무의 특성상 은행업에서 신뢰는 최우선으로 지켜져야 할 가치로 꼽힌다. 이 회장의 쇄신 다짐이 공염불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외형 확장보다는 금융사의 첫 번째 덕목인 신뢰 회복에 먼저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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