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정협의체, '개문발차' 속도 주목… 순항 여부는 '글쎄'

대한의학회·KAMC, 협의체 참여 전격 결정
韓 "결단 감사" 野 "전공의 합류 여건 조성해야"
전공의·의대생 대표 "허울 뿐… 참여 의향 없다"
의대생 휴학·내년 의대정원 등 논의 여부도 미지수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22일 여야의정 협의체 참석 의사를 밝혔다. 이진우(왼쪽) 대한의학회 회장이 지난달 11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인턴 수련 제도 및 전공의 수련 환경 개선 기자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의학회와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가 22일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일부 의사단체가 참여를 결정함에 따라 대통령실과 여야 정치권은 협의체를 공식적으로 띄울 수 있는 모멘텀을 얻었다는 점에서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여야의정 협의체가 전공의·의대생 등 없이 ‘개문발차’에 속도를 낼지 주목된다.


다만 대한의사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 등이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의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대화에 부정적인 기류가 적지 않다. 그런 탓에 협의체 출범까지 순탄하지 않으리라는 전망이 적지 않다. 여기에 당장 대한의학회와 KAMC 모두 내년도 의대 정원을 협의체에서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협의체 내 충돌도 예상된다.


대한의학회와 KAMC는 이날 “국민과 환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때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인한 대한민국 의료 붕괴를 묵과할 수 없다”며 협의체 참여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한의학회는 의협을 제외하면 가장 큰 규모의 의사단체로 전체 의사의 80~90%인 전문의들이 산하의 26개 진료과별 전문학회에 소속돼 있다. 의대협회는 의대 학장들이 속한 의대 교육 책임자들의 단체로, 의학교육계를 대표한다. 이들 단체의 무게감은 적지 않은 셈이다.


두 단체는 공동 입장문에서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추진에 분명히 반대한다. 젊은 의사들의 충정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협의체 참여에 앞서 각종 현안들을 진정성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협의체에서 의대생 휴학계의 대학 자율적 허가, 2025·2026년 의대 정원 논의와 더불어 의사 정원 추계기구 입법화 계획 설정을 요구했다. 의대생 교육 및 전공의 수련기관의 자율성 존중,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 독립성·자율성 보장도 요구했다.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 대해서도 “개편을 통해 의료계가 모두 인정할 수 있는 투명하고 합리적인 정책 결정의 장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밝혔다.



22일 오전 내원객들이 진료 지연 안내문이 놓인 서울 한 대형병원 응급의료센터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의학회는 이번 주 중 여야의정 협의체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등에 대한 실무적인 논의를 진행할 방침이다. 의학회와 KAMC가 여야의정 협의체 참여를 결정한 가운데 다른 의료계 단체들은 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우선 국내 유일의 법정 의사단체인 의협은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의료계의 의견을 반영한 협의를 이뤄달라고 당부했다. 의협은 이날 입장문에서 “현시점에서 협의체에 참여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며 “두 단체의 결정을 존중하고 부디 의료계 전체의 의견이 잘 표명될 수 있도록 신중함을 기해주기를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의협은 협의체에 참여하지 않고 있지만 의학회 및 관련 기관들과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내부 논의를 계속 이어갈 것”이라며 “의학회가 협의체 참여를 결정한 만큼 전공의와 의대생들의 요구를 반영하고 의료계 전체의 의견을 고려한 협의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는 뜻을 전했다.


강희경 서울의대·병원 교수 비대위원장은 “결단에 응원을 보낸다. 모쪼록 논의가 잘 이루어져 우리나라의 의료체계가 하루빨리 건강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 의대 교수는 “두 단체가 욕먹을 것을 각오하고 사태의 시급성을 고려해 어려운 결정을 했다고 생각한다”며 일단 물꼬를 튼데 의의를 뒀다.


정치권도 반기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대한의학회와 KAMC의 협의체 참여를 환영한다. 향후 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고 말했다. 협의체를 제안해 추진해온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오랫동안 국민들께 불편을 드린 의료 상황을 해결할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의료계의 결단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도 “의정 갈등의 난국을 해결할 수 있는 첫걸음으로 국민 입장에서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며 “의료 대란을 해소하고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길이라면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민주당은 참여 여부에 대한 확답은 자제한 채 협의체에 전공의들이 합류할 여건 조성을 촉구했다. 황정아 대변인은 “전공의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밝히고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그 구조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박 위원장과 의대생 대표들은 “허울 뿐인 협의체에 참여 의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뉴스1

하지만 협의체를 둘러싼 의사들의 반응은 부정적인 경우가 더 많다. 의사 커뮤니티에서는 교수들을 비하하며 “본성을 못 버리고 또 배신했다” “만에 하나라도 졸속 합의하고 다시 돌아오라고만 해봐라” 등의 비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의대 교수 단체인 전국의대교수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대한의학회의 협의체 참여에 대해 “이사회도 없이 수뇌부 몇 명이서만 결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 상황을 파악 중”이라고 전했다. 최창민 전의비 위원장도 “내년도 증원은 안 된다고 보는데 정부는 조정이 안 된다고 하니까 협상의 여지가 없다”며 “이러다 내년에 일단 뽑고 이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나가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 관계자는 “의료개혁특위에서 나오는 내용이 어이없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 내용이 너무 많다 보니 의학회는 특위를 통한 의료 시스템을 만드는 부분에 대한 우려가 큰 것으로 보였다”고 전했다.


협의체를 띄우기까지도 진통은 불가피하다. 특히 대한의학회·KAMC가 요구하는 내년도 의대 정원 재논의와 의대생 휴학 승인 등이 의제로 오를 수 있을지 여부가 문제다. 의사단체들이 내년도 의대 정원을 되돌려야 한다고 완강히 주장하는 만큼 정부도 내년도 의대 정원 증원을 되돌릴 수 없다는 입장이 강하다.


특히 사태의 핵심인 전공의와 의대생부터 대화에 부정적인 만큼 협의체를 띄운다 해도 흐름이 순조롭지 못함은 물론 얼마나 영향력이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박단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손정호·김서영·조주신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비대위원장은 공동으로 “허울뿐인 협의체에 참여할 의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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