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이후 수신 금리 인상을 주저하던 시중은행이 본격적으로 예적금 금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수신금리 인하는 기준금리를 반영한다는 명목이지만 대출금리는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올리는 추세여서 ‘이자 장사’에 몰두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23일 우리은행은 이날부터 적립식 예금 상품인 ‘우리 퍼스트 정기적금(12개월)’ 기본금리를 연 2.2%에서 2.0%로 0.2%포인트 인하한다고 밝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조정”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행이 이달 11일 기준금리를 3.5%에서 3.25%로 0.25%포인트 내린 후 주요 시중은행이 이를 수신 상품 금리에 반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통상 금리 조정 시 예적금 금리를 모두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우리은행은 이날 예금 상품 금리 인하 방침은 내놓지 않았다. 대표 예금 상품인 ‘WON플러스 예금’ 금리가 은행채와 연동돼 수시로 조정이 이뤄지는 만큼 별도 인하에 나서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WON플러스 예금의 12개월 적용 이율은 이날 기준 3.37%로 이달 1일 3.50% 대비 이미 0.13%포인트 내려갔다. 예적금 상품에 시장금리 인하분이 모두 반영된 셈이다.
이와 별개로 이날 우리은행은 신용대출 갈아타기 우대금리를 1~1.9%포인트 축소한다고 공지했다. 가산금리를 높여 갈아타기 수요를 줄여 대출을 관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NH농협은행도 이날 기준금리 인하 영향을 반영해 수신 상품 금리를 낮췄다. 거치식 예금 상품은 0.25~0.40%포인트, 적금 상품은 0.25~0.55%포인트 각각 인하하기로 했다. 아울러 농협은행은 청약 예금과 재형 저축 상품 금리도 0.25%포인트 내리기로 했다. 우리은행과 농협은행이 수신금리 인하에 나섬에 따라 다른 은행들도 금리 인하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
지방은행과 저축은행은 기준금리 인하에 맞춰 이미 수신금리를 조정한 상태다. 경남은행은 이달 17일 주요 수신 상품 금리를 0.2~0.75%포인트 인하했고 부산은행도 18일부터 수신 상품 금리를 0.10~0.35%포인트 낮췄다. 이 밖에 SC제일은행도 17일 주요 예금 상품의 금리를 0.1%포인트 인하하고 다음 달부터는 예금금리를 최대 0.3%포인트 내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저축은행권도 속속 금리 인하에 나서며 이달 초까지 판매되던 4%대 정기예금이 모두 사라진 상태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전날 기준 1년 만기 정기예금 상품의 최고 금리는 3.95%다.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는 올려왔던 은행권이 수신금리를 잇달아 낮추면서 또 ‘이자 장사’에 나섰다는 목소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권은 가계대출 관리를 이유로 7월부터 본격적으로 가산금리를 올리며 최근까지 수차례 대출금리를 높여왔다. 이에 따라 연말까지 은행의 예대 금리 차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8월 신규 취급액 기준 가계 예대 금리 차(정책 서민금융 제외)는 평균 0.57%포인트로 전월 대비 0.136%포인트 늘어났다. 예대 금리 차가 벌어진 것은 올 4월(0.05%포인트) 이후 넉 달 만이다. 시장에서는 9월은 물론 10월 이후에도 예대 금리 차가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눈치를 보던 시중은행 중 일부가 수신금리 인하에 나서면서 나머지 대부분의 은행도 연말까지 금리를 내릴 가능성이 크다”며 “하지만 대출 총량 관리는 보다 엄격해질 것으로 예상돼 당분간 예대 금리 차는 확대 기조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