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20대 기업이 사용한 전력은 8만 5000GWh다. 이들이 납부한 전기요금은 12조 4430억 원이었다. 이번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분을 적용하면 20대 기업이 추가 납부하는 전기요금은 연간 1조 2000억 원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전력이 전기요금 조정으로 늘어나는 연 매출액이 약 4조 7000억 원이라고 한 만큼 4분의1에 달한다. 대기업 요금을 적용받는 전체 업체로 범위를 확대하면 이들의 추가 부담액은 4조 5100억 원에 육박한다. 최남호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용도별 요금 인상을 어떻게 분배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최근 경제지표를 보고 전반적인 경제 상황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부담 여력이 큰 쪽은 수출 중심의 대기업이기 때문에 고통 분담 차원에서 이번까지만 산업용 중심으로 올렸다”고 설명했다.
전력 업계에서는 고물가와 내수 침체로 가계와 자영업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정부가 주택용과 소상공인용 전기요금까지 올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산업부 역시 이날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은 물가지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가정용 요금 인상 시의 부담을 간접적으로 시인했다. 산업부에 따르면 수출 대기업의 전체 원가에서 전력 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1.3~1.4% 정도다. 산업용 전기요금이 오를 경우 수출 물가에 반영될 수는 있지만 국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도 산업계의 부담이 적지 않다는 점은 알고 있다. 최근에는 반도체 같은 국가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어려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한전의 경영 상황이다. 한전은 누적 적자가 41조 원에 달하고 부채가 200조 원이 넘어 전기요금 현실화가 시급하다. 결국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부담은 최소화하면서 한전의 경영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선택한 카드가 대기업 중심의 요금 인상인 셈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전의 산업용 고객은 44만 곳으로 전체의 1.7%에 불과하지만 전체 전력 사용량의 53.2%를 차지해 요금 인상에 따른 반발은 적고 인상 효과는 크다. 전직 정부 관계자는 “자영업자들이 여름철 개문 냉방을 포함해 전기를 쉽게 쓰는 분위기가 있다”며 “이런 부분을 그냥 둔 채 산업용 전기요금만 올리는 것은 반쪽 인상”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전기요금 전반에 대한 구조적인 개편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과거에는 산업용이 주택용에 비해 쌌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한전에 따르면 2000년 주택용 전력 판매 단가(107.3원)의 절반에 불과했던 산업용 전력 판매 단가(58.3원)는 문재인 정부 때인 2019년 처음으로 주택용을 역전했다. 이후 주택용이 산업용보다 다시 높아졌지만 지난해 재역전됐다. 지난해 산업용 전력 판매 단가는 1㎾h당 153.7원으로 주택용(149.8원)보다 3.9원 비쌌다. 올 상반기에는 산업용 162.7원, 주택용 152.7원으로 격차(10원)가 더 벌어졌다. 한전이 이날 산업용 전기요금을 추가로 올리면서 산업계의 전기요금 부담은 한층 커지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배전 설비 투자가 적어 원가가 적게 드는 산업용이 주택용보다 낮은 게 일반적이다.
국제 비교를 해봐도 국내 주택용 전기요금은 유난히 낮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의 산업용 전기요금 수준은 2022년 32위에서 지난해 26위로 상승했지만 주택용은 계속 35위에 머무르고 있다. 한국보다 주택용 전기요금이 저렴한 OECD 회원국은 헝가리·튀르키예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가정용 전기요금은 총괄 원가에도 못 미친다. 주택용과 일반용 전기요금은 지난해 5월 이후 1년 6개월째 동결 중이다.
가정용 요금이 상대적으로 싸다 보니 적절한 수요 관리가 안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한전의 전체 전력 판매량은 전년 대비 0.4% 감소했는데 산업용(-1.9%)이 크게 감소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번에 요금을 동결한 주택용(1.7%)과 일반용(2.9%)은 전력 사용이 되레 늘었다. 이를 고려하면 서민층에 큰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가정용과 일반용도 단계적으로 가격 정상화를 추진해야 한다는 조언이 많다. 전력 업계의 한 관계자는 “결국 주택용·일반용 전기요금을 충분히 올리지 않아 자발적인 수요 감소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셈”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