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졸중 골든타임 사수 비결? 365일 24시간 켜두는 ‘119핫라인’ [메디컬 인사이드]

■홍정호 계명대동산병원 신경과 교수
뇌졸중의 80~90%는 뇌경색…골든타임 4.5시간
치료 골든타임 이내 병원 도착 환자 26%에 그쳐
대구시, 2019년 급성 뇌경색 초동대응 시스템 도입
전용 앱으로 구급대원·의료진 간 긴밀한 협력 구축

이미지투데이

‘뇌졸중 환자 발생’


추석 연휴 직전인 금요일 오후 10시 24분. 당직 근무 중이던 홍정호 계명대동산병원 신경과 교수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이 울렸다. 홍 교수가 잠을 잘 때조차 알람을 켜둔다는 스마트폰 앱 ‘FASTroke’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신호였다.


‘서경자(가명) 72세 여성. 얼굴주름 비대칭. 한쪽 팔 떨어짐. 말이 부정확함’


119구급대원이 보낸 뇌졸중 의심 환자의 신상 정보를 빠르게 읽어내려 가던 홍 교수의 시선이 한 곳에 멈췄다. ‘LNT 1825’ LNT는 ‘Last Normal Time(마지막으로 정상이었던 시각)’의 약어다. 뇌졸중이 발생하기 전 정상 상태를 마지막으로 확인한 시점을 뜻한다. 이 환자의 경우 오후 6시 25분까지는 뇌졸중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뇌혈관 막히는 순간부터 1분에 뇌세포 190만개 파괴…골든타임 ‘4.5시간’

뇌졸중은 뇌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 혈류 공급이 중단되고 뇌세포가 손상되어 신경학적 증상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뇌혈관이 막히면 분당 190만 개의 뇌 신경세포가 파괴된다. 대응이 늦어질수록 환자의 뇌는 더욱 손상된다. 후유장애가 남을 위험성도 커진다. 때문에 1분 1초라도 빨리 초급성기 치료가 가능한 뇌졸중센터로 이송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죽하면 뇌졸중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시간이 뇌(time is brain)’라는 표현이 통용되곤 한다.


흔히 뇌졸중이라고 하면 뇌출혈을 떠올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내에서는 매년 13만~15만 명의 뇌졸중 환자가 새롭게 발생하는데, 그 중 뇌혈관이 터져 발생하는 뇌출혈은 10~20% 남짓이다. 혈관이 막혀 뇌조직이 괴사하는 뇌경색이 전체 뇌졸중의 약 80~90%로, 서구화된 식습관 등의 영향으로 동맥경화 관련 인자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갈수록 그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급성 뇌경색 치료의 핵심은 막힌 혈관을 최대한 빨리 뚫어 뇌에 혈액을 다시 보내주는 것이다. 혈관을 막은 혈전을 녹일 수 있는 혈전용해제(tPA)를 정맥 내로 투여하거나 큰 뇌동맥이 막힌 경우 동맥 안에 기구를 넣어 혈전을 직접 제거하는 시술이 필요하다. 특히 tPA는 증상 발생 후 4시간 30분 이내에 정맥 내 투여돼야 후유장애를 최소화할 수 있다.



◇ ‘119 핫라인’ 구축해 뇌졸중 의심 환자 선제 대응…재개통 치료율 높여

병원에 도착하고도 뇌 컴퓨터단층촬영(CT) 같은 검사를 시행하고 결과를 확인하려면 족히 30분은 넘게 걸린다. 일반적으로 LNT가 재개통 치료의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 환자의 경우 뇌졸중이 거의 확실해 보이는데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오세요” 10시 26분. 짧은 통화를 마친 홍 교수의 걸음이 빨라졌다. 앱에 전송된 환자의 정보를 토대로 사전 접수가 이뤄졌고 동시에 알람을 확인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환자가 도착하는 즉시 이용할 수 있도록 CT 검사실을 비워뒀다.


“정맥내 혈전용해제 투여를 시행했습니다” FASTroke 앱을 통해 의뢰된 환자에게 tPA가 투여된 건 병원 도착 23분만이었다. 곧장 tPA를 투여할 수 있도록 병원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덕에 이 환자는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은 채 재개통 치료를 받았고 후유장애 없이 퇴원할 수 있었다. 홍 교수는 “급성기 뇌졸중은 최초 이송 때부터 뇌졸중센터를 보유한 병원으로 이송되는 게 중요하다”며 “119구급대가 급성 뇌경색 환자를 인지하는 병원 전단계에서 의료진과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핫라인을 구축한 결과 재개통 치료 시행 시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 뇌경색 환자 4명 중 3명은 골든타임 놓쳐…대구지역 병원들, 초동대응 강화

뇌경색은 증상 발생 후 정맥 내 tPA를 투여하면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발병 후 3개월째 혼자 생활할 수 있는 확률이 2배, 동맥내 혈전제거술을 성공적으로 시행하면 발병 후 3개월째 좋은 예후를 가질 확률이 2.5배 높아진다. 대한뇌졸중학회가 발간한 팩트시트에 따르면 2022년 뇌경색 증상 발생 3시간 30분 내 병원에 도착한 환자의 비율은 26.2%였다. 뇌경색 환자 4명 중 3명은 치료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의미다. 정맥 내 혈전용해술과 동맥내 혈전제거술을 합쳐 재개통 치료를 받은 비율은 전체 환자의 약 16.3%에 그쳤다.



대구광역시의 Fastroke 사업 소개. 사진 제공=대구광역시 응급의료지원단

홍 교수가 사용한 FASTroke 앱은 ‘Fast And Safe Transport for stroke’의 약자다. 대구광역시가 2019년 전국 최초로 도입한 FASTroke 사업에서 명칭을 따왔다. 대구시는 급성 뇌경색 환자의 예후를 개선하려면 병원 도착 전 초동 대처가 중요하다는 현장 의료진들의 목소리를 반영해 119핫라인을 구축했다. 119구급대가 지역에서 발생한 급성 뇌경색 의심환자의 정보를 병원 도착 전 의료진과 공유해 사전 접수, 검사 준비 등에 소요되던 시간을 최소화하고 최종 치료까지의 시간을 단축시키려는 취지다. 환자의 회복률을 향상시키고 후유장애를 방지하는 데 궁극적인 목표를 둔다.



이웃손발시선 뇌졸중 식별법. 사진 제공=대한뇌졸중학회

홍 교수에 따르면 FASTroke 앱을 사용한 경우 응급실에 도착해 뇌 CT를 시행하는 데 걸린 시간이 평균 25분에서 19분으로 6분 가량 당겨졌다. 정맥 내 tPA 투여는 평균 48분에서 37분, 동맥내 혈전제거술은 평균 119분에서 82분으로 각각 9분과 37분씩 단축됐다. 재개통 치료가 이뤄진 환자 비율은 57%로 FASTroke 앱을 사용하지 않은 경우보다 약 22.8%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 “시스템 갖춰져지만…의료진 희생 없이는 유지 어려워”

시스템이 전부는 아니었다. 한 명의 환자라도 더 살려야 한다는 일념 하에 자진해서 밤낮 없이 응급콜을 받는 의료진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성과다.


현재 계명대동산병원에서 급성 뇌졸중 치료를 담당하는 신경과 전문의는 홍 교수 포함 2명에 불과하다. 둘이서 한주씩 번갈아 ‘온콜(on-call·전화 대기)’ 당직을 서고 5~6일에 한 번씩은 밤샘 당직을 선다. 밤을 새운 다음날도 외래진료나 입원 환자를 봐야 해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날이 부지기수다. 당직이 아닌 몇 안되는 날도 응급 환자를 놓칠까봐 수시로 알람을 확인한다.



홍정호 계명대동산병원 신경과 교수가 뇌졸중 치료에서 골든타임 사수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제공=계명대동산병원

홍 교수는 “이러한 시스템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려면 119구급대원은 물론 상시 대기 중인 의료진에 대해서도 합리적인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며 “무엇보다 뇌졸중 전임의 자체가 부족해 지속 가능성에 대한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뇌졸중 의심 환자의 119 이용률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그는 “입꼬리 한 쪽이 잘 올라가지 않고 팔·다리에 힘이 빠지는 등 뇌졸중 의심 증상이 한 가지라도 나타나면 즉시 119 신고 후 뇌졸중센터를 방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