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화되는 고물가 국면에서 가격을 15년 전보다 낮춘 제조·유통 일원화(SPA) 브랜드 내의류가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고 있다. 로고가 없고 포장이 밋밋한 대신 가격대를 낮추자 젊은 소비자들이 몰렸기 때문이다. 예전 같은 내복이 아니라 입어도 표나지 않는 기능성 의복으로 브랜딩한 이 제품들은 겨울철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
27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이달 2일부터 25일까지 이랜드 스파오 발열내의 ‘웜테크’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보다 두 배 뛰었다. 이랜드는 앞서 이달 2일부터 웜테크 가격을 2009년 출시가인 1만2900원보다 낮춘 9900원으로 책정했는데 그 효과를 톡톡히 본 것이다. 2009년 출시한 웜테크는 올해 누적 500만 장 판매를 돌파한 스파오의 스테디셀러다. 특히 대학생들 사이에서 웜테크는 원조격인 유니클로 제품보다 저렴하면서 품질은 못지않은 필수품으로 떠올랐다. 스파오는 웜테크가 스파오 서울 홍대점 매출을 1년 만에 20% 끌어올렸다고 보고 있다.
스파오는 지난해 8월에도 웜테크 판매가를 20% 가량 낮춘 바 있다. 당시 스파오는 가정용 난방 비용이 연달아 인상되자 발열내의 수요가 높을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2022년 도시가스 요금은 4·5·7·10월 네 차례에 걸쳐 인상됐는데, 서울을 기준으로 2022년 메가줄(MJ)당 14.2원이었던 가스 요금이 19.7원으로 올랐다. 스파오 관계자는 “2022년 겨울 ‘난방비 대란’이 발생하자 이듬해 가격 인하를 목표로 원가 혁신 작업을 시작했다”며 “생산 담당자들이 수천 ㎞에 달하는 비행 거리를 소화하며 소재 거래처를 발굴해 단가를 맞췄다”고 설명했다.
SPA브랜드들이 내의 가격을 내리는 이유는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면서 전체 실적에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겨울철 발열 내의는 대표적인 미끼 상품이다. 무신사는 2020년부터 5년째 내의류 ‘힛탠다드’의 100원 행사를 열고 있다. 올해는 이달 24일부터 무신사 스탠다드 상품을 하나만 담아도 발열 내의를 1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오프라인도 서울·경기·대구·부산 등 전국 주요 매장에서 오는 11월 3일까지 고객 1인당 힛탠다드 최대 5개를 4900원에 판매한다. 신성통상(005390) 탑텐은 25일부터 일주일 간 열고 있는 발열내의인 모이스처웜을 주력으로 ‘텐텐데이 1+1’ 행사를 열고 있다. 그 밖에 지오다노의 발열내의인 지워머도 가성비 상품으로 통한다.
젊은 고객들이 합리적인 의류 상품을 선호하는 현상이 더욱 강해지면서 저렴한 가격대를 내세운 SPA 브랜드는 당분간 더 인기를 끌 전망이다. 올해 들어 10월 25일까지 스파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5% 성장했고, 같은 기간 삼성물산(028260) 패션부문 에잇세컨즈는 10%, 신성통상 탑텐은 12% 가량 판매가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과 마찬가지로 국내에서도 젊은이들이 고가 상품의 저렴한 대체품을 찾는 ‘듀프(Dupe)’ 소비 행태가 나타나고 있다”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