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환율 상승 속도 커…11월 통화정책 결정에 고려"

워싱턴 D.C. 국내 기자단 오찬 간담회
환율 수준도 높아…11월 금통위 논의
수출 성장률 둔화, 거시건전성 정책 등
다른 요인들과 금리 결정에 고려하기로
美의 대선·견조한 성장이 强달러 배경
재정적자 확대 속 금리 빠르게 못 내려
금리 인하 실기론엔 강한 어조로 반박
환자 아프게 하고 약 줘 낫게 하자는 것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주요20개국(G20) 출장 기자단과 오찬 간담회를 열고 향후 통화 정책 방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G20 재무장관회의 출장 기자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상승 폭이 컸던 원·달러 환율을 다음 달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할 때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3분기 성장률 쇼크’에 다시 고개를 든 금리 인하 실기론에 대해선 “환자를 일부러 많이 아프게 한 뒤 약을 써 나으면 명의가 되는 것이냐"며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25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주요 20개국(G20) 중앙은행 총재 회의와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그룹(WBG) 연차 총회에 참석한 뒤 국내 기자단과 오찬 간담회를 열고 “환율이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높게 올라와 있고, 상승 속도도 좀 큰 것 같다"며 "10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고려하지 않았던 환율이 다시 (통화 정책 결정에 ) 고려 요인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11월에 어떻게 할지는 금통위원들과 아직 상의를 안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얘기할 순 없다”면서도 “수출 성장률 둔화가 내년도 경제성장률에 미칠 영향, 현재 진행 중인 거시건전성 정책이 금융안정에 미치는 효과, 미국 대선 후 달러 강세의 지속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데이터를 보고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가 환율을 통화 정책에 고려하겠다고 밝히면서 내달 금통위의 금리 인하 가능성이 더욱 낮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통상 원달러 환율 상승은 수입 물가를 끌어 올리고 시차를 두고 소비자 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최근 가파르게 오른 환율이 진정되지 않을 경우 한은이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설 명분이 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2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는 전일보다 8.5원 상승한 1388.7원을 기록했다. 주간 거래 종가 기준으로 지난 7월 3일(1390.6원) 이후 가장 높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주요20개국(G20) 출장 기자단과 오찬 간담회를 열고 향후 통화 정책 방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G20 재무장관회의 출장 기자단'

이 총재는 현재의 높은 환율 수준이 쉽게 내려가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달러 강세의 배경에 미국 대통령 선거와 미국의 경제 성장 등 외부 요인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어느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미 행정부의 재정 적자가 계속될 가능성이 높고 미국 경제도 견조하게 성장하고 있다"며 “금리를 빠르게 내리기 어려운 환경으로 최근 2주 간 강달러 현상이 이어진 것도 이런 이유"라고 설명했다.


각국의 중앙은행 총재들도 강달러에 대해 비슷한 시각을 갖고 있다고 이 총재는 소개했다. 그는 "이번 회의에서 중앙은행 총재들 사이에서도 연준이 11월에 금리를 25bp 내려도 강달러 추세가 쉽게 전환되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많았다"며 “재정 적자는 커지는데 금리는 빠르게 내리지 못하는 게 연준의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3분기 부진한 경제 성장률 지표에 재점화된 금리인하 실기론에 대해선 강한 어조로 반박했다. 우리나라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 분기보다 0.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지난 8월 한은이 예상했던 성장률(0.5%)을 크게 밑돈 ‘쇼크'다. 이 때문에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렸어야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실기론을 주장하는 측은 미국이 금리를 올릴 때 (우리는) 좌고우면하다가 덜 올려서 지금은 내릴 수도 없는 외통수에 걸렸다고 한다"며 “그 때 많이 올려놨어야 한다는 얘기인데 환자를일부러 많이 아프게 해놓고 약을 쓴 다음에 조금 나으면 ‘내가 명의다’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당시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도 있고, 자영업자들도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금리를 올리면 가계가 힘들고 부동산 PF가 터지면 위험하니 (금리를) 잘 올려서 사고 없이 물가를 잡으려고 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5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주요20개국(G20) 출장 기자단과 오찬 간담회를 열고 향후 통화 정책 방향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G20재무장관회의 출장 기자단

이 총재는 "실기론 가운데서도 인플레가 2%대로 안착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던 7월부터 미리 금리를 낮췄어야 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반드시 틀렸다고 할 순 없다"며 “하지만 통화정책을 할 때는 경기 외에도 금융 안정과 환율 변동 등 고려하는 요인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금리를 많이 내렸으면 환율도 지금 1380원보다 더 올라서 복잡해졌을 것”이라며 “7월에 금리를 내리지 않아 경기가 나빠졌다고 주장하려면 가계부채와 환율 상황도 같이 거론하면서 비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총재는 GDP 성장률의 분기 발표를 계속 이어갈 뜻도 밝혔다. 그는 “이번 3분기 성장률 전망이 당초 예상인 0.5%를 크게 밑돌았지만 분기 성장률은 연간 대비보다 변동이 훨씬 클 수 밖에 없다”며 “분기로는 0.4%포인트 차이가 나지만 연간으로 환산하면 예컨대 2.4% 성장률이 2.2%나 2.3% 정도로 조정되는 것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분기 발표는 시장에 많은 정보를 투명하게 제공하고 뭐가 틀렸는지 서로 디베이트하는 장점도 있다"며 “일희일비하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는 것 밖에 되질 않는다. 그러면 새로운 시도를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이 총재는 금리를 낮춰 수요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건설 경기를 부양하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의 뜻을 밝혔다., 그는 “3분기 성장률을 섹터뱔로 보면 건설업이 굉장히 안 좋은데 건설업의 고용을 늘리자는 얘기는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시켜 옛날 식으로 성장시키자는 말로 밖에 안들린다”며 “부동산 PF의 구조조정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건설 경기를 살리기 위해 이자율을 낮추거나 정부가 보증해주는 형태로 건설업을 살리는 것엔 반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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