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부동산 정책 상품의 신규 대출 금액이 관리 한도의 80%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삐 풀린 정책자금이 금융 당국의 가계부채 억제 기조까지 흔들고 있지만 정부는 실수요자의 반발을 우려해 제대로 손을 쓰지 못하고 있다.
27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주택도시기금 정책 상품의 신규 공급액은 올해 9월 누계 기준 약 43조 원으로 집계됐다. 앞서 정부는 올해 정책 상품 공급 목표액을 55조 원으로 정했는데 연말까지 불과 석 달을 남겨둔 상황에서 한도의 78.2%를 소진했다. 주택도시기금 상품은 주택 구입용 디딤돌과 전세대출 상품인 버팀목 등으로 구성된다.
문제는 정책 상품을 찾는 수요가 이어지고 있어 공급 목표액 이상으로 시장에 자금이 풀릴 수 있다는 점이다. 정책 상품은 올 들어 매달 평균 5조 원가량 지속해서 공급되고 있다. 차주의 상환 여력을 깐깐히 따지는 민간 대출 상품과 달리 일정 소득 요건만 맞추면 대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추세가 연말까지 이어진다면 15조 원의 자금이 새로 풀려 정부가 설정한 관리 한도를 3조 원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정책 상품 초과 공급 우려가 특히 큰 것은 정부의 통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국토교통부는 21일부터 생애최초 주택 구매자에게 적용하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낮춰 정책대출 한도를 줄이려고 했다가 이를 철회했다. 정책대출이 가계부채 급등을 주도하자 뒤늦게 속도 조절에 나서려 했지만 무주택 실수요자의 거센 반발에 다급히 발을 뺀 것이다. 한 발 물러선 정부는 수도권 등 일부 지역에 한해서만 정책대출 한도를 줄이는 식으로 실수요자의 저항을 누그러뜨릴 절충안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적용 대상을 좁힐수록 정책대출 관리 효과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정책대출이 조절되지 않으면 전체 가계대출(정책대출+민간 대출) 관리 목표마저 흔들리게 된다. 최악의 사태를 막으려면 은행권을 억눌러 정책 상품 초과 공급분만큼 민간 대출을 더 죄야 할 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최근 은행들이 수차례 대출 금리를 올리고 다주택자 대출을 제한하며 대출 문턱을 한껏 올려놓은 상황이라 대출 규제가 지금보다 강해지면 차주들의 혼란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민간에 떠넘긴다는 비판을 피하기도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