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소련 국가 조지아에서 26일(현지 시간) 4년 임기의 국회의원 150명을 뽑는 총선이 치러진 가운데 친러 성향인 현 집권 여당이 단독 과반을 차지하며 크게 승리했다. 반면 야당은 출구조사와 다른 결과에 “국민들의 표를 도둑맞았다”며 결과에 승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27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조지아 선거관리위원회는 99%가량의 개표가 진행된 가운데 집권 여당인 ‘조지아의 꿈(GD)’이 약 54%를 득표했다고 밝혔다. 연합한 4개 야당의 득표율을 합쳐도 37%가량에 그치고 있어 여당의 과반 의석 확보가 확실해졌다.
하지만 야당은 개표 결과에 반발하고 있다. 선관위의 발표가 서방 여론조사 기관인 에디슨리서치와 해리스엑스의 출구조사 결과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앞서 두 기관이 실시한 두 차례의 출구조사에 따르면 여당인 ‘조지아의 꿈’은 40.9%, 42%, 4개 야당 합산은 51.9%, 48%를 기록해 야당의 득표율이 우세했다. 연합 야당 ‘변화를 위한 연합’의 니카 그바라미아 대표는 “헌법적 쿠데타”라고 비판했고 제1야당인 통합국민운동당의 티나 보쿠차바 대표 역시 “우리는 조작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반발했다.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조지아의 꿈’이 선거를 조작했을 가능성과 러시아 개입 의혹 등이 제기되고 있다. 선거참관인연합 ‘위보트(We Vote)’ 등은 선거일 조지아 전역의 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조작하거나 유권자가 협박을 받는 모습이 관찰됐다며 “우리는 계속해서 결과의 무효화를 요구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블룸버그 역시 러시아 정보부가 지난 수년간 조지아 정부 기관과 주요 언론, 선거관리위원회까지 해킹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러시아는 조지아 정부가 원하지 않는 행보를 보일 경우 전력·통신 등 인프라망을 손상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상태”라고 평가했다.
약 400만 명의 유권자가 참여한 이번 선거는 조지아의 미래가 친서방이냐, 친러시아냐를 결정지을 중대한 분수령으로 여겨졌다. 조지아는 1991년 소련에서 독립을 선언한 후 오랜 기간 유럽연합(EU) 가입을 열망하는 등 확고한 친서방 노선을 보였다. 하지만 친러 성향의 재벌 정치인 비지나 이바니슈빌리가 창당한 ‘조지아의 꿈’이 2012년부터 장기 집권하면서 서방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특히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에 대한 서방 제재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등 친러 성향이 강해졌고 EU는 결국 조지아의 EU 가입 절차를 전면 중단했다. 친서방 성향의 4개 야당 연합이 이번 총선을 통해 정권을 교체하고 중단된 EU 통합을 재추진하겠다고 나선 배경이다.
야당은 조지아 국민들이 이번 선거에 승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규모 시위를 촉발할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보쿠차바 대표는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빼앗기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조지아 선관위는 이번 선거가 평화롭고 자유로웠으며 국제 기준에 따라 진행됐다는 입장이다. 외신들은 ‘조지아의 꿈’이 승리를 확정 지을 경우 더 많은 옛 소련 공화국을 EU로 편입시키려던 서방의 계획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