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서관을 주민들은 인제의 응접실이라고 불러요. 외부 손님이 오시면 기적의도서관으로 안내합니다. 이런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에 인제 사람들의 자부심이 높죠.”
지난해 6월 말 문을 연 강원 인제기적의도서관은 독특한 설계와 운영으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2층 원통형 구조의 도서관은 지하와 지상 2개 층이 하나의 공간으로 연결되도록 한 설계가 압권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3개 층 도서관 대부분이 한눈에 들어온다. 높다란 서고는 스타필드 별마당도서관을 연상하게 한다.
심민석 인제기적의도서관 관장은 “설계자가 개방형 구조인 미국 보스턴의 한 도서관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소개하면서 “열린 공간 구조에 맞춰 책을 읽는 도서관의 기능을 넘어 상상력을 자극할 복합 문화시설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이곳은 기존 도서관의 고정관념을 깼다. 열람실부터 따로 없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식 열람석과 서고와 2층 복도 곳곳에 책 읽을 공간을 만들었다. 1층과 지하층을 연결하는 계단식 열린 극장은 ‘도서관은 조용해야 한다’는 금기를 깼다. 이곳에서는 작은 음악회와 인형극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도서관은 입소문을 타면서 인제군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6월 말 개관 1주년을 앞두고 방문자 10만 명을 넘어섰다. 3만 명 남짓인 인제군 인구의 3배가 넘는다. 10월 말 현재 누적 방문자 수는 약 15만 명에 달한다. 주말에는 등산복 차림의 방문자가 온다고 했다.
이곳은 어린이 도서관 건립 캠페인을 벌이는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17번째 기적의도서관이다. “도서관은 인제군의 한 공무원이 문화 소외 지역인 인제에 제대로 된 도서관을 짓기 위해 여러 아이디어를 찾으면서 시작됐어요. 그분의 남다른 열정과 인제군의 결단, 재단의 지원이 기적의 도서관을 만들었죠.”
공공 문화시설 우수 사례로 꼽히면서 전국의 수많은 지방자치단체와 교사 단체, 학교 등의 예약 방문이 줄을 잇고 있다. 지금까지 150여 곳, 3000여 명이 견학 또는 벤치마킹 차원에서 이곳을 찾았다. 심 관장은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도 이렇게 만들 수 있구나’ 하는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가 인제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19년 말이다. 문헌정보학 박사 출신인 그는 인천시립도서관장을 지내는 등 도서관 관리자로 탄탄대로를 걷다 ‘뭔가 의미 있는 일에 도전하자’는 심정에서 인제군의 사서 공모에 지원했다. 그는 “기적의도서관이어서 의미가 있는 데다 인제군의 도서관에 대한 진정성이 느껴져 지원했다”고 말했다. 이어 “인제군의 관심과 열정이라면 ‘사서 인생을 걸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도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합격 직후 인제로 이사 왔다. 심 관장은 10일 지역사회의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신구도서관재단’이 선정한 신구문화상 ‘올해의 사서’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곳에서도 노벨 문학상에 빛나는 한강 열풍이 확인된다. 그는 “책을 빌리려는 대기자가 밀려 새 책을 주문하려고 한다”며 “책 읽는 문화가 널리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과거 도서관은 책을 빌리는 공간, 학습 공간이 따로 없는 분이 찾는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가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서관의 경쟁자는 카페라는 말이 있어요. 젊은 세대는 카페에서 책을 읽고 노트북으로 영상을 보면서 공부하는 데 익숙하잖아요. 음악을 들으면서 책을 읽기도 하고요. 이런 추세에 도서관도 맞춰야 합니다. 검색으로 정보를 얻기 쉬운 요즘은 질문하는 힘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도서관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공간이 돼야 하는 것이죠.”
심 관장은 “진정한 지방 시대를 열려면 문화 수요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면서 “고급 문화 공간은 지역 소멸의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제에는 3군단과 12사단이 주둔해 있어요. 처음에 군인 혼자 왔지만 나중에 가족을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아이 키우기 좋은 곳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인제군의 출산율도 올라갔어요.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인제의 합계출산율(1.36명)은 강원도 1위를 차지했어요. 도서관 하나 때문에 출산율이 오르는 것은 아니겠지만 긍정적인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중장년 남자들이 인제 하면 먼저 연상하는 게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아니겠습니까. 기적의 도서관이 인제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