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은행이 음식 배달 앱 ‘땡겨요’를 통해 내년 초에 시행될 한국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 실거래 테스트에 참여한다. 음식을 토큰으로 간편 주문하는 것으로, CBDC 기반 예금 토큰을 비대면 온라인 결제에 사용하는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은행은 최근 한국은행과 땡겨요를 토큰 이용 가능 상거래 가맹점에 포함하기로 협의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이 내년 초 은행권과 함께 최대 10만 명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할 예정인 CBDC 실거래 테스트에 땡겨요가 가맹점으로 참여한다. 현재까지는 NH농협은행이 같은 계열사인 하나로마트를 CBDC 테스트 가맹점으로 등록하는 등 결제처가 오프라인 매장에만 국한돼 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신한은행은 땡겨요에 CBDC를 통한 결제가 가능하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고 CBDC 토큰용 전자지갑도 함께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BDC는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전자화폐로 중앙은행이 보증한다는 점에서 비트코인 같은 민간 가상자산과 달리 화폐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실거래 테스트에서는 한국은행이 기관용 CBDC를 발행하고 은행들이 이를 금융기관 간 결제에 활용해 토큰을 발행한다. CBDC 실험 참가 희망자는 참여 은행을 통해 예금을 토큰으로 교환받은 뒤 결제처에서 사용할 수 있다. 지급받은 토큰은 은행 앱 내 전자지갑에 보관된다.
한국은행이 내년 초에 시행할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테스트는 CBDC가 실제 일상생활에서 활용될 수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은은 당초 올해 12월부터 CBDC 활용성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었지만 일부 은행이 시스템 개발에 차질을 빚으면서 내년 초로 일정이 미뤄졌다. 새로운 화폐인 CBDC를 실제로 지급하고 결제하는 사상 초유의 ‘실험’인 만큼 준비 과정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CBDC의 다양한 활용성을 점검하고 지급과 결제의 안정성 등을 테스트하려면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가맹점 참여는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에서 CBDC를 활용할 수 있는 신한은행 배달 앱 ‘땡겨요’의 참여는 CBDC의 현실 도입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CBDC 테스트를 추진 중인 관계부처는 조만간 이와 관련된 금융 규제 샌드박스 심사를 마치고 참가 은행을 발표할 예정이다. KB국민·신한·우리·NH농협·기업은행 등 주요 은행은 모두 참여 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실사용 테스트는 한국은행이 은행 간 자금 이체 거래에 활용할 수 있는 기관용 CBDC를 발행하고 참여 금융기관 등은 이와 연계된 지급결제 수단인 토큰을 발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일반 소비자들은 자신의 예금을 토큰으로 전환해 테스트에 참여하는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관계기관은 테스트 과정에서 분산원장 기록과 은행의 장부 기록을 실시간으로 연계해 지급결제의 법적 효과를 안정적으로 보호한다는 방침이다.
테스트 참가 인원은 최대 10만 명으로 정해졌지만 토큰으로 발행할 전체 금액 등은 아직 관계부처 간 논의 중이다. 총액보다는 참가자당 금액 제한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만약 인당 토큰 지급액이 선불전자지급 한도인 200만 원이 된다면 실험을 통해 발행되는 총 토큰의 규모는 최대 2000억 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이번 실험을 통해 보조금·상품권·이용권 등 바우처를 블록체인 기반 토큰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 검증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테스트 이후 다양한 바우처 기능이 부과된 예금 토큰 등의 유통·관리를 지원할 수 있는 공공 플랫폼 구축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금융권은 토큰 보관과 결제가 실행되는 ‘뱅킹 앱’을 통한 고객 유입에도 주목하고 있다. 테스트에 참여하는 은행들은 결제처는 모두 공유하지만 예금을 토큰으로 전환하고 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각 은행이 개발한 전자지갑을 활용해야 한다. 고객이 사용하는 은행 앱들이 한정된 만큼 은행권의 테스트 참가자 확보 경쟁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신한은행이 땡겨요를 테스트에 참여시키기로 한 것도 고객 확대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땡겨요는 신한금융그룹 최초이자 유일한 비금융 플랫폼이다. 2022년 출시돼 지난달 말 기준 약 365만 명의 회원을 확보했다. 하지만 다른 배달 앱 등에 밀려 서비스 확장에 한계가 있었다. 신한은행의 한 관계자는 “CBDC 테스트 참여로 땡겨요 결제처를 확대하는 효과가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한은행은 지난달 말 금융 당국에 땡겨요 부수 업무 지정을 요구하는 혁신금융 서비스 규제 개선 요청 신청서를 내며 정식 업무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관계자는 “가상자산에 관심이 있는 고객은 전통 은행권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토큰을 사용하는 일 자체가 흥미로울 것”이라며 “연계된 서비스를 제공해 유입 고객의 관심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금융권은 토큰 발행과 결제를 담당하는 단순 참여를 넘어서 차별화 요인을 모색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오프라인이 아닌 온라인 사용처로서 CBDC의 활용 가능성을 점검하는 테스트베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 현재까지 알려진 활용처는 일부 편의점과 농협 하나로마트 등 오프라인 가맹점들이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토큰 사용처를 포함해 여러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확정이 되는 대로 공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CBDC 토큰용 전자지갑 도입과 함께 디지털 자산 연계 서비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뮤직카우’ 등 토큰증권 발행 사업자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토큰증권공개(STO) 지갑을 만들고 우리은행의 전자지갑 ‘원더월렛’과 대체불가토큰(NFT) 플랫폼 간 연계를 통해 은행 앱에서 직접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국민은행도 특화된 서비스를 개발해 제공하기 위해 내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이번 테스트에서는 상거래 결제 이외에는 토큰의 이체가 불가능해 전환받은 토큰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지속해서 해당 은행 앱에 접속해야 한다”며 “일반 국민들이 직접 참여해 디지털 통화의 효용성과 혁신성을 체험해볼 수 있는 첫 기회인 만큼 은행들의 디지털 실력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