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5일(현지 시간)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전후로 한국 경제를 둘러싼 위기의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다. 미 대통령 선거와 맞물린 상·하원 선거를 공화당과 민주당 중 누가 가져가느냐와 우크라이나와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 중국의 경기 둔화가 뒤엉켜 국내 수출과 물가 및 성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제네바 대표부 대사를 지낸 최석영 법무법인 광장 고문은 “트럼프가 당선되고 상·하원도 공화당이 장악하면 각종 무역 규제와 같은 트럼프 정책의 파괴력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한국 경제는 2분기 마이너스 성장을 한 데 이어 3분기에도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경기 침체의 문턱에 서 있다. 하지만 한국은행은 환율 급등에 따져야 할 변수가 늘었다. 대한민국호가 처한 경제 상황과 복합 위기의 전망을 분야별로 알아본다.
◇환율 1400원 선이 ‘뉴노멀’ 될 수도=2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의 주간 거래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는 전 거래일보다 1.5원 오른 1386.5원에 마감했다. 6거래일 연속 1380원 대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1390원 대를 넘나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환율이 더 상승해 심리적 마지노선인 1400원 이상으로 오를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트럼프가 깜짝 당선됐던 2016년 연말 당시 환율은 트럼프가 승리한 11월 8일 1135원에서 연말 1208.5원으로 약 두 달 만에 6.48% 치솟았다.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 1400원이 ‘뉴노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트럼프 당선 시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정도까지는 오를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위원도 “엔화 및 위안화 동반 약세, 유가 불안, 국내 3분기 국내총생산(GDP) 쇼크, 북한발 지정학적 리스크 등 원화 약세 심리를 부추기는 재료가 넘쳐난다”고 분석했다.
◇물가 “누가 되든 인플레이션 압력…미 국채금리 급등 전이 우려”=환율 급등 시 물가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특히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재정적자를 늘리는 정책을 예고하고 있어 누가 되든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진다는 게 월가의 예상이다. 이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모든 수입품에 10%, 중국산에 60%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힌 바 있어 미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물가를 끌어올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미 국채금리 급등에도 영향을 준다. 재정적자와 물가 우려에 시장에서는 10년 만기 미 국채금리가 연 4.5%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현재 10년물 금리는 4.28% 수준이다. 경제학자인 에드워드 야데니는 “두 사람 다 재정적자 감축을 우선순위에 두고 있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에 따른 여파다. ‘미 국채금리 급등→한국 국고채 금리 상승→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 “연말까지는 상승세 유지…미중 갈등에 내년 무역 급감 우려”=이론적으로는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실적이 나아지지만 한국 기업의 현지 투자·생산이 늘면서 환율 상승의 긍정적 효과는 줄어든 상황이다. 반면 누가 미 대선에서 승리하든 예견된 미중 갈등은 큰 리스크 요인이다.
미중 갈등이 글로벌 무역 규모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도 수출국인 한국에는 악재다. 윌버 로스 전 상무장관은 트럼프의 보편 관세 공약이 실현되면 글로벌 무역에 약 1조 달러(1380조 원) 규모의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성장 낙관적인 정부·한은…성장률 예상보다 낮을 수도=대외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지만 정부의 경제성장률 전망은 상대적으로 낙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는 내년도 민간소비 성장률을 정부(2.3%)보다 낮은 1.9%로 관측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내년도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정부 전망(2.2%)보다 낮은 2.1%을 나타낼 것이라고 봤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은 내년 경제가 상저하고 양상을 띨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여기에는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내수 부양 효과가 올 하반기부터 나타날 것이라는 전제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수출 피크아웃과 내수 불안으로 내년 경기는 올해보다 좋지 않은 상황으로 갈 수 있다”고 짚었다.
◇일자리 60대가 고용 이끌어…취업자 수 지속 하락=경기 후행지표로 꼽히는 고용 역시 전망이 밝지 않다. 당장 올해 1~2월 30만 명대를 기록했던 취업자 증가 수는 지난달 기준 14만 4000명으로 떨어졌다. 예정처는 내년도 취업자 수가 정부 전망(17만 명)보다 적은 11만 5000명 늘어나는 데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60대가 이끄는 ‘역피라미드’ 형태의 고용 구조도 문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고용지표는 코로나19 이후 서비스업 부문에서 급증하면서 일종의 거품이 있었다”며 “수출 경기가 나쁜 데다 건설 업황도 정체돼 고용시장도 점점 안 좋은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