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010130)이 긴급 이사회를 열고 결의한 2조 50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는 영풍(000670)·MBK파트너스와의 지분율 격차를 단번에 해소할 수 있는 카드다. 특히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주주당 최대 3%로 청약 물량을 제한한 것은 이번 유증에 우군을 다수 결집시켜 영풍·MBK 측 지분율을 넘어서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관측이다.
그렇지만 자신들이 자사주 공개매수로 유통 물량을 대거 없애놓고 다시 신주를 발행하는 점, 유증 목적 대부분이 공개매수 차입금 상환을 위한 용도인 점 등은 비판이 불가피한 대목이다. 주주당 청약 물량을 3%로 제한한 것도 향후 법적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이 계획 중인 2조 5000억 원 규모 유상증자와 최근 공개매수로 취득한 자사주의 대규모 소각이 완료되면 영풍·MBK의 지분율은 현재 38.47%에서 36.06%로 2.4%포인트가량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반면 최윤범 회장 일가와 베인캐피털의 합산 지분율은 현재 17.05%에서 16.26%로 0.8%포인트가량만 낮아진다. 이날 고려아연 이사회에서 결정한 주주당 배정 물량 최대치(3%)를 이들이 모두 청약했을 경우를 가정한 숫자다.
여기에 기존 우군으로 분류돼왔던 트라피구라·현대차·LG화학·한화나 다른 법인들이 추가로 이번 유증에 참여한다고 가정하면 이들의 총 합산 지분율은 영풍·MBK 측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특별관계자로 묶이지 않은 최 회장 측 우호 세력들이 유증에 대거 참여한다면 사실상 제3자 배정 유상증자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주당 89만 원의 공개매수 때와는 달리 유증 공모가가 67만 원 선이라면 배임 논란을 피해 들어오는 게 가능하다.
만약 이런 예상이 현실화될 경우 영풍·MBK와 최 회장 측 지분율은 각각 36.06% 대 38.53%로 역전될 수 있다. 아울러 고려아연은 우리사주조합에 이번 유증 물량의 20%를 우선 배정하기로 하면서 최 회장 측 지분율을 추가로 3.33%포인트 높이게 만들었다. IB 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금력이 있는 MBK에 최대 청약 물량을 제한해두면서 최 회장은 우군들을 모아 지분율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라며 “상대편의 손발을 묶어둔 사이 아군을 늘리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린 셈”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기존 1.4%의 자사주를 우리사주에 처분하는 방안의 경우 배임 이슈에 걸릴 수 있어 기습적인 유증을 꺼낸 것으로 짚었다.
시장에서는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1인당 청약 물량을 최대 3%로 제한한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갑론을박도 펼쳐지고 있다. 불특정 다수에게 청약 기회를 주는 일반공모 방식을 택하면서 청약 물량을 제한하는 조항을 뒀다는 점에서 법적 논란이 생길 여지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증권 인수 업무 규정을 보면 청약 물량을 제한하는 뚜렷한 근거가 없다”면서 “회사가 주주 균등 배정을 하지 않은 채 자의적으로 물량을 제한한다는 것인데 일반공모 취지와는 배치되는 성격이 있다”고 말했다.
영풍·MBK도 이번 유증을 두고 법적으로 하자가 많은 데다 시장 내 공정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부당한 처사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MBK 관계자는 “청약 제한에 걸리는 기존 주주들에게 귀속돼야 할 부(wealth)를 저가에 들어오는 신규 주주에게 이전시키는 부당한 구조”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고려아연은 이번 청약 방식이 관련법에 근거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자본시장법상 일반공모 증자에 대해 1인당 청약 물량 제한을 금지하고 있지 않다”면서 “특히 이번 일반공모 증자가 주주 기반 확대를 통한 국민기업화 및 유통 물량 확대에 따른 주가 불안전성 해소 등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봤을 때 합리적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고려아연이 이번 유증으로 마련하는 2조 5000억 원 중 2조 3000억 원을 차입금 상환용으로 쓰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주주 환원을 위해 자사주 취득 후 소각을 계획해놓고 다른 주주 자금으로 차입금을 갚는 모양새기 때문이다. 실제 최 회장 등 고려아연 현 경영진은 지난달 23일까지 영풍·MBK에 맞서는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하며 대규모 차입을 일으킨 바 있다. 메리츠증권(1조 원), SC은행(5000억 원), 하나은행(4000억 원), 한국투자증권(2000억 원), KB증권(2000억 원) 등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신규로 일으킨 차입금만 총 2조 3000억 원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