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 사흘 뒤 유상증자 실사"…고려아연 2.5조 유증 파장 커진다 [황정원의 Why Signal]

11일 설명서에 "재무구조 변경 계획 없다"더니
89만원 공개매수 진행 중 67만원 유증 준비해
미리 알렸다면 투자자 대부분 청약신청 했을 듯
부정거래 및 허위 기재 논란, "신뢰 상실한 결정"
소액주주 보호 강조해 온 금융 당국에도 반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 참석해 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최윤범 고려아연(010130) 회장이 추진하는 2조 5000억 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 파장이 커지고 있다. 고려아연이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와중에 유증을 준비했다는 점에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및 공개매수신고서 허위 기재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이번 유증이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지 여부를 차치하고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누누이 외쳐온 소액주주 보호에 반한다는 점도 비판을 받는 주 요인이다.


3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 11일 주당 83만원에서 89만원으로 자사주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며 제출한 공개매수설명서에서 장래계획 항목에 “공개매수자는 본 공개매수 이후 회사의 지배구조, 재무구조, 사업내용 등에 변경을 가져오는 구체적인 장래계획은 수립하고 있지 않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최 회장 측은 공개매수가 진행 중이던 지난 14일 미래에셋증권에 유증 준비를 위한 실사를 맡겼다.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증권신고서에 첨부한 기업실사보고서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은 이달 14일부터 29일까지 고려아연 기업실사를 진행했다. 대항공개매수가 이뤄지고 있는 시기에 '주주들 돈으로 빚을 갚는' 유상증자를 고민한 것이다.


일반 주주들의 손실이 우려되는 결정에도 어떠한 알림도 없었다. ‘허위 기재’ 지적을 받는 대목이다. 만약 공개매수 기간 중 67만원의 유증 계획을 발표했다면 기존 주주들은 모두 89만원의 자사주 공개매수에 청약했을 가능성이 높다. 고려아연과 베인캐피털은 이달 4일부터 23일까지 진행한 공개매수에서 최대 20% 목표 물량 중 11.26% 확보하는 데 그쳤다. 신고서 정정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진 금융감독원도 이런 문제와 공개매수 종료 뒤 불과 일주일 만에 유증을 하겠다는 점 등에 대해 들여다볼 것으로 전해졌다.


최 회장 측의 이 같은 결정은 결국 자사주 공개매수로 영풍·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를 저지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 지분율은 영풍·MBK와 최 회장 측이 38.47% 대 35.97%로 2.5%포인트 차이를 보인다. 유증이 성공하게 되면 MBK가 최대 물량인 3%를 확보해도 36.06% 대 38.53%로 최 회장 측이 판을 뒤집는다. 여기에 주당 80만원대의 공개매수 참여는 부담스러웠던 트라피구라·한화 등의 우호군도 60만원대 유증이라면 법적 부담감 없이 들어올 수 있다.


이는 곧 자신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대규모 차입금을 일으켜 공개매수를 하면서 주주가치 향상을 명분으로 앞세웠지만, 곧장 주주가치를 희석시키는 유증을 발표함으로써 자기 모순에 빠진 것을 보여준다. 특히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의 대부분인 2조3000억 원을 차입금 상환에 쓴다는 점도 문제다. 주가가 추가로 떨어지면 유증 가격도 예정인 67만원 보다 더 내려갈 수 있다. 30일 고려아연 주가는 하한가로 급락해 108만 1000원에 마감했다.


고려아연은 지난 공개매수설명서에서 “특정 주주 개인의 이익에 좌우되지 않고 주주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정립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며 “주주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더욱 노력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일반 주주 가치를 훼손시키는 결정으로 인해 명분도 크게 잃게 됐다. 고려아연에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법적 제반 사항은 꼼꼼히 따졌지만 투자자들은 등을 돌리고 있다. 고려아연 지지를 선언했던 소액주주 플랫폼 액트는 유증 발표에 크게 실망을 하고 철회하는 방안까지 고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신뢰를 상실하는 부도덕한 결정으로 악수(惡手)가 될 것”이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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