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땐 기업부담 年16조…"임금체계 개편이 선결과제"

[눈앞에 닥친 고용절벽] < 중 > 계속고용 가로막는 '연공형 임금체계'
호봉제 등 개편없이 정년만 늘리면
기업 비용 상승…청년고용 여력 ↓
임금·일자리 불평등만 심화 전망
취업규칙 변경 등 노사 합의 필요

22일 서울 한 노인복지관에 일자리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정년 연장을 비롯해 계속고용 문제를 풀기 위한 핵심 쟁점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 완화를 통해 연공형 임금 체계 손질에 대한 타협을 이룰 수 있을지로 요약된다. 두 사안은 노동계와 경영계의 찬반이 극명하게 나뉘고 워낙 현장에서 폭발력이 강해 그동안 접근법조차 찾기가 불가능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만 두 사안을 현재와 같은 형태로 둔다면 어떠한 계속고용 방안이 나오더라도 현장 안착이 힘들고 고용시장의 임금·일자리 불평등을 더 심화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31일 경영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계속고용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대통령 소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내 계속고용위원회에 참여한 노사는 10월 24일 8차 회의부터 임금 체계 개편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만일 이 위원회에서 노사정 합의가 이뤄지면 합의안은 정책화 수순을 밟는다.


경영계는 임금 체계 개편과 연관해 취업규칙 변경이 더 쉬워져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근로기준법상 취업규칙 변경은 근로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나 근로자의 과반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법적 조항 탓에 너무 어렵다는 게 경영계의 주장이다. 당연히 취업규칙이 불리하게 바뀌는 데 대해 노조가 동의할 리 없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계속고용 방식으로 임금 삭감이 이뤄지는 퇴직 후 재고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에 대한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임금 삭감은 취업규칙 불이익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7월 근로자 30인 이상 기업 1047곳을 대상으로 계속고용 정책에 대해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정부 우선 지원책(복수 응답)으로 ‘임금 유연성 확보를 위한 취업 규칙 변경 절차 개선’이 47.1%로 가장 높았다.


경영계 주장의 배경은 고령층에 대한 임금 삭감 없이 고용 기간을 늘리면 비용 부담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20년 임금 삭감 없이 정년을 법적으로 65세 이상으로 연장하면 전체 기업이 부담할 추가 비용이 연간 약 15조 9000억 원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한국개발연구원도 2020년 정년 연장 영향을 분석한 결과 정년 연장 수혜자가 1명 늘어나면 청년 고용이 0.2명씩 감소했다. 고령층 고용 유지 비용 부담 탓에 기업의 청년 채용 여력이 현격하게 감소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 완화가 노사 테이블의 ‘금기어’일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라는 점이다. 노동계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가 완화되면 부당하고 불합리한 취업규칙으로 피해를 보는 사업장이 크게 늘 것이라고 우려한다. 60세 이상 법정 정년을 논의했을 때도 노사는 임금피크제와 연관해 이 사안을 논의했지만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처럼 노동 개혁을 추진했던 박근혜 정부는 일반 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완화를 동시에 추진했다가 2016년 9월 15일 노사정 대타협 파기를 불러왔다. 공교롭게도 당시 대타협 파기를 선언한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현재 계속고용위원회에서도 노동계 대표로 참여 중이다.


경영계의 주장대로 취업규칙 변경 절차가 완화되면 임금 체계 개편은 속도를 낼 수 있다. 경영계와 정부가 원하는 임금 체계 개편 방향은 호봉급이 만든 연공성을 낮추는 것이다. 1970년 등장해 대기업 임금 체계의 대명사로 불리는 호봉제는 근속 연수가 길어질수록 임금이 높아지는 구조다. 호봉제를 도입하는 대기업은 10곳 중 6곳이다.


호봉제의 폐단은 두 가지다. 성과에 따른 공정한 보상을 가로막는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사업체 패널 조사를 기초로 분석한 성과 관리 시스템 분석에 따르면 2019년 3만 4527곳을 설문조사한 결과 인사 평가에 대한 이의 신청 비율은 9.3%를 기록했다. 이는 동일한 방식의 2015년 조사 비율( 4.1%)의 두 배를 넘었다.


또 호봉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 격차를 심화하는 요인이다. 고용노동부의 지난해 6월 기준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 300인 이상 사업체의 정규직 시급을 100으로 놓으면 300인 이상 비정규직 시급은 67.2다. 300인 미만 비정규직은 44.1까지 떨어진다. 게다가 중위 임금의 3분의 2 미만을 뜻하는 저임금 근로자 비중은 16.2%로 전년보다 개선되지 못했다. 고용시장의 저임금 고착화가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용시장은 스스로 임금 체계로 인한 악순환을 끊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원청과 하청으로 요약되는 두 층은 임금 격차가 너무 커 이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서다.


김경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회장은 “호봉제는 고령자의 장기 고용 안정을 저해하고 있다”며 “호봉제로 인한 생산성과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사가 임금 체계 개편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절차 완화는 세대 전체 적용이 아니라 60~65세는 적용을 예외로 두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다”며 “정부는 노사가 임금 체계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돕고 고령자에게 직업 훈련, 컨설팅 등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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