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오미 클라인이 말한 거 봤어?”
2011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가 한창이던 미국 맨해튼 월가 주변 공원의 공중화장실. 시위대의 한 사람으로 화장실 안에 있던 당사자 나오미 클라인은 나갈 채비를 하다 멈칫했다. 다음 말이 이어질 때까지 자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 빠르게 고민했다. 그들의 대화 속 나오미의 강한 발언들은 자신의 입에서 나온 게 아니었다. 다른 작가이자 비평가인 나오미 울프의 이야기였다.
그들은 왜 두 사람을 헷갈렸을까. 둘은 나오미라는 이름을 가졌고 여성인 데다 유대인이고 글을 쓴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나오미 울프의 경우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저자인 나오미 클라인은 다국적 기업의 횡포와 기후변화에 대한 비평을 다룬다는 점이 달랐다. 이날 화장실 속 여성들의 ‘혼동’과 같은 일은 이후 10년 간 지속됐고 더 확대됐다. 두 사람을 혼동하는 대중들이 더 늘어난 것이다. 저자는 생각한다. ‘온라인 공간에 나의 도플갱어가 돌아다니고 있다.’
캐나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나오미 클라인이 쓴 ‘도플갱어(글항아리 펴냄)’는 ‘거울 세계로의 여정(A trip into the Mirrror World)’라는 부제를 담고 있다. 도플갱어는 독일어에 기원을 둔 단어로, ‘이중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공포·스릴러 장르에서 장치적으로 쓰이던 도플갱어가 사회과학 현상을 짚는 핵심 개념으로 차용됐다는 것부터 흥미롭다.
저자는 독자를 그가 찾아가는 여정의 동행자로 만든다. 다국적 기업이 민주주의에 끼치는 해악을 고발한 ‘노 로고’,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가 자연재해, 전쟁, 테러를 자양분으로 삼아 덩치를 불려가는 ‘쇼크 독트린’ 등으로 명성을 쌓아가던 한 저자가 있다. 대중들은 같은 이름을 가지고 발언권을 행사한다는 이유로 누군가와 그를 헷갈리기 시작한다. 대중이 그와 똑같이 생각하는 상대는 점점 코로나19 등에 대해 극단적인 발언을 하면서 극우적으로 변해 간다. 그의 명성과 평판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형성된다. 대중들은 그를 극단주의자로 오해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발견한 것은 극우주의자들이 쓰는 언어와 자유주의자 또는 좌파들이 쓰는 언어가 다르지 않으며 좌파들은 이미 정치적 언어의 독점권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이다. 어떤 텍스트를 볼 때 이를 깊게 파고들지 않는 대중의 입장에서는 좌파의 언어와 우파의 언어가 크게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혼동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미국 사회를 극단적으로 양분한 것은 팬데믹 직후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효과를 두고 벌어진 백신에 대한 음모론이었다. 나오미 울프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책사인 스티브 배넌이 진행하는 극우주의 팟캐스트 ‘워룸’에 등장해 코로나19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등 음모론을 퍼뜨렸다.
자유주의자는 백신의 안정성이나 기후 변화 대처 등과 관련해 국가와 엘리트를 신뢰할 수 있다고 안심시킨다. 반면 백신 회의론자들도 ‘자체적인 연구’에 대한 신뢰도를 바탕으로 어느 때 국가를 믿어야 하고 의심해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둘은 나름의 신뢰도를 가지고 있다는 유사점을 바탕으로 끝없는 평행선을 만들어낸다.
도플갱어 이슈를 역사적, 국가적으로도 확장한 점은 이 논픽션의 백미로 꼽힌다. 히틀러는 돌연변이가 아니라 미국과 영국 등 제국주의 대표 국가의 뒤틀린 도플갱어였다는 주장이다. 나치 당원 다수는 미국의 프런티어 신화(정착지의 영토 확장 차원에서 서부를 개척할 권리) 등을 즐겨 학습했고 유대인 수용소 역시 미국이 처음 아프리카 인구를 납치하고 노예화하는 한편 원주민들을 분리한 데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거울 세계는 단순히 한 방향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양방향이 서로 영향을 준다는 점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학생 기자였던 저자는 20대 초반 시절 이제 막 유명세를 얻기 시작한 울프를 만난다. 울프는 클라인을 한 눈에 꿰뚫어본다는 듯 단정적인 판단을 내렸다. 클라인은 당시 울프가 지닌 아우라에 압도당해 자신도 그와 비슷한 아우라를 내기를 바랐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만 그 전에는 그 역시 울프의 도플갱어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담담한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