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중국 디스플레이 생태계와 동맹을 맺고 수천억 원을 투자해 현지에 연구 벨트 구축을 시작했다. 스마트폰을 넘어 태블릿PC·노트북 등으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적용처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에 치우쳐 있는 공급 편중을 해소하는 한편 OLED 조달 비용을 낮출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애플과의 협력을 통해 단기간에 중국의 기술력이 뛰어오를 수 있는 만큼 아이폰 등에 패널을 주로 공급하는 한국 기업들의 애플 공급망 내 영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일 디스플레이 업계에 따르면 애플은 최근 중국 베이징·선전·쑤저우·상하이 등 4곳에 현지 디스플레이 연구소를 설립했다. BOE 등 중국의 대표적인 디스플레이 패널사뿐만 아니라 장비·재료 관련 회사들도 연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당 연구소에서는 아이폰·아이패드·비전프로는 물론 향후 나올 폴더블 아이폰 등에 들어갈 패널을 개발·테스트하고 있다”며 “한국산 패널 등도 함께 비교하며 품질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연구소가 들어선 지역들은 모두 동부 연안에 형성된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 클러스터의 주요 도시들이다. 애플은 선전 연구소에만 약 20억 위안(약 1935억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소 인력은 추후 1000명까지 늘릴 예정이다. 이 외 지역의 연구소까지 고려하면 애플이 연구 벨트 구축에 들인 비용은 수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애플이 중국 디스플레이 생태계에 천문학적 자금을 투입한 것은 중국 기업의 수준을 빠르게 끌어올려 한국에 의존해온 OLED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데 속도를 내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중국 업체들은 애플의 주요 OLED 공급사로 편입하고자 했지만 번번이 미끄러졌다. BOE는 아이폰15에 이어 아이폰16에서도 품질 문제를 드러내며 대량 공급에는 실패했다. BOE의 경우 현재까지는 아이폰16 기본 라인업에 일부 물량을 대고 있지만 한국 기업의 납품 단가보다는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폰17에서도 중국 기업의 편입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은 향후 국내 기업들이 개발에 성공한 선단 기술인 저온다결정산화물(LTPO) OLED를 확대 적용할 계획인데 중국 기업들이 아직 이 부분에서 애플의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해서다.
다만 현재의 기술 우위에도 국내 업계로서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기술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중국 업체는 물량 공세를 이어가고 있다. 양질 전환을 시도하는 셈이다. 중국 업계는 올해 1분기 처음으로 글로벌 OLED 패널 출하량에서 국내 업계를 넘어섰다. 물량 공세에 더해 추후 애플과 중국 업계의 연구 성과에 따라 한국 업계의 입지가 위태로워질 수 있는 이유다.
폴더블 디스플레이도 차세대 격전지로 부상하고 있다. 애플은 2026년 스마트폰에 폴더블 패널을 적용할 계획인데 이번 연구에 참여하는 중국 업체 중에는 폴더블·롤러블 디스플레이의 내구성을 테스트하는 장비를 만드는 폴딩 테스트 장비 업체도 포함됐다. 시장조사 기관 마켓앤마켓에 따르면 폴더블 디스플레이는 2029년까지 연평균 23.6% 성장할 예정이다.
문대규 순천향대 디스플레이신소재공학과 교수는 “폴더블 부문에서 기술 차이는 존재하지만 비즈니스에 기술만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중국이 치고 올라올 여지는 있다”며 “지근거리에서 애플과 중국 업계가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고 목표를 공유하는 만큼 기술 개발 속도가 크게 향상될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