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골이 오싹해지는 중국 메모리의 'POWER'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차이나 메모리의 공습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서울경제 DB

정보기술(IT) 시장에 관심 많으신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지난달 31일 삼성전자의 3분기 실적 발표회에서 중국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김재준 삼성전자 부사장은 "중국 D램 업계의 레거시 제품 공급 증가가 예상된다"고 설명했죠.



8일 삼성전자 3분기 잠정실적에서 언급된 ‘중국 메모리 업체의 레거시 제품 공급 증가’ 내용. 자료출처=삼성전자

삼성이 '차이나 리스크'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건 이달 들어 벌써 두 번째입니다. 10월 8일 잠정실적 발표 때 이례적으로 중국 메모리에 대한 영향을 설명한 데 이은 발언이었습니다.


그럼 중국 메모리 회사는 어떤 걸 하고 있기에 D램 시장에서 독보적 1위인 삼성전자에 위협이 되는 것일까.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우리나라가 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걸까. 아니면 이미 넘어선 것일까? 지금부터 저와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살펴보시겠습니다.



중국 허페이시에 본사를 둔 현지 최대의 D램 회사 CXMT. 사진제공=CXMT

모바일·PC 등에 활용되는 CXMT의 범용 DDR4, LPDDR4X 메모리. 사진제공=CXMT

◇삼성도 저가 메모리 생산이 '메인' = 삼성과 SK하이닉스가 중국의 추격을 안심할 수 없는 이유. 여전히 레거시 D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요한 매출원이기 때문입니다. 지금부터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신빙성 있는 자료를 공급하는 것으로 유명한 트렌드포스의 자료를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중국 최고의 D램 업체죠. CXMT의 이야기부터 꺼내볼까 합니다. D램 개발 로드맵은 크게 10나노급 1세대(1x) →10나노급 2세대(1y)→3세대(1z)→4세대(1a) 노드(node)로 구분하는데요. 트렌드포스에 명시된 CXMT 제품군은 19·17·16나노 D램입니다. 업계의 통상적인 분류에 따라 19나노 D램을 1x, 17나노 D램을 1y 16나노 D램을 1z 제품으로 가정하고 더 자세히 들여다 보겠습니다.




이 회사는 올 3분기부터 16나노(1z급) D램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1z D램은 삼성전자가 2019년에 개발한 제품이죠. CXMT와 삼성의 기술 격차는 5년이지만 중국의 기술 전환 속도는 빠릅니다. 현재 19%에 불과한 16나노 D램 생산 비율이 내년 4분기엔 거의 두 배 수준인 36%로 껑충 뛸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래도 아직 1z D램 수준일 뿐인데 괜찮지 않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3세대나 앞선 1c D램 양산을 앞두고 있는데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이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제품군 별 생산 비율을 따져봅시다. 우리는 두 회사의 최첨단 제품 양산 여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4분기까지 삼성전자에서 가장 생산 비율이 높은 제품은 1z D램입니다. 올 4분기 전체 생산 D램의 30%는 1z D램이고요. 심지어 내년 4분기 1c D램을 양산한다고 가정해도 1z의 비율은 35%로 가장 높습니다.


HBM 명가 SK하이닉스도 올 4분기 상황은 비슷합니다. 5세대 HBM3E 양산을 위해 10나노급 5세대(1b) 비율을 꽤 올리고 있고, 1a D램의 비율도 높은 편이지만 하반기 1z 생산 비율은 30% 수준으로 상당히 중요한 매출원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럼 미세 공정의 적용 비율을 따져봤으니 D램 용량 별로도 한번 볼까요. 범용으로 분류되는 8Gb 시장은 올해 들어 고용량 칩인 16Gb 생산량에 대세의 자리를 내줬습니다. 그래도 세계 시장에서 두 번째로 큰(전체 D램의 24.8%, 16Gb는 34.4%) 생산량을 자랑합니다. 아직 적잖은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라는 거죠. 실제 아직도 많은 매체와 업계 관계자들이 DDR4 8Gb PC용 제품의 고정거래 가격으로 D램 시황을 관측하기도 합니다.




이 시장에서 CXMT는 올 2분기 3억 3475만 개의 8Gb D램을 생산했습니다. 전체 8Gb 물량의 22.6%를 차지합니다. 2022년 2분기 2.78%→2023년 2분기 6.1%에서 1년 만에 16%p 이상을 끌어올리며 업계에 확실하게 눈도장을 찍었습니다.


물론 CXMT는 정말 돈이 되는 고용량 16Gb 시장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생산 물량의 발끝도 못 따라갑니다. 아직도 공정이 고용량 D램을 할 만한 수준은 아니고, 생산능력 역시 삼성전자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쳐서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상해 봅니다. CXMT가 출하한 3억 3475만 개 8Gb 칩을 예전처럼 한국이 독점하다시피 팔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삼성전자의 3분기 매출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CXMT가 단번에 판세를 뒤엎을 수준은 아니었더라도, 레거시 시장에서 야금야금 영향력을 갉아 먹으면서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 이 수치의 핵심입니다.



테크인사이츠의 HBM 시장 점유율 자료. HBM2 시장은 올 1분기 기준 삼성전자가 대부분의 점유율을 차지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이 시장을 CXMT가 탐내는 것으로 보입니다. 자료출처=테크인사이츠

CXMT는 차세대 제품 개발에도 만전입니다. 얼마전 HBM2 시장을 겨냥하기 위한 제품 출하를 시작했다고 하죠. 테크인사이츠에 따르면 HBM2 시장은 이번 1분기까지 삼성전자가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던 영역입니다. 1분기 이후 약 9개월 동안 시장의 모습은 많이 변했겠지만, HBM 시장에서도 CXMT는 저가 전략으로 균열을 시도하려는 듯 합니다. 과거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저가 제품인 LCD로 처음 접근하던 모습과 유사하죠.



중국 D램업체 CXMT가 IEDM 2023에서 소개한 4F²(수직) D램 구조와 특성. 일정한 문턱전압 곡선을 보여주고, 소자가 켜지고 꺼질 때 누설 전류 정도를 의미하는 S·S곡선은 여태 세상에 나온 수직 D램 중 2번째로 좋다고 소개했습니다. 자료출처=IEDM 2023 CXMT 논문

또 하나 볼 것이 3D D램 시장인데요. 중국 D램 업계는 트랜지스터를 평면에 배치하는 2D D램에서는 삼성·SK하이닉스와의 격차를 인정하면서도요. 무주공산인 3D D램에서는 큰 기회가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 연재물에서 숱하게 언급 드렸던 부분이기도 한데, 중국이 차세대 D램 구조에 정말 관심이 많고 연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이야기는 계속해서 여러 경로로 듣고 있습니다. 몇 년 뒤 중국이 3D D램 기술을 먼저 차지하게 된다면 단숨에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도 큽니다.


◇파운드리는 안심할 수 있을까? = 메모리 분야를 짚어본 김에 중국 파운드리 업체의 성장도 간략하게 짚어보겠습니다. 우리가 삼성 파운드리와 TSMC 간 선단 공정 쟁탈전만 비교하느라 중국 파운드리의 성장을 약간 간과한 측면도 있는데요.



SMIC의 월간 생산능력과 가동률, 분기당 웨이퍼 출하량. 자료출처=SMIC 2분기 보고서.

SMIC의 올 2분기 자료만 봐도 파워가 느껴집니다. 이 회사의 8인치 웨이퍼로 환산한 2분기 생산 능력은 월간 83만 7000장입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75만 4250장과 비교하면 10% 이상 올랐습니다. 가동률은 85.2%입니다. 가동률과 생산 능력 모두 우상향입니다. 미국의 강도 높은 반도체 장비 규제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죠.


트렌드포스의 자료를 보면 글로벌 시장 점유율도 야금야금 잘 먹고 있습니다. 지난해 4분기에만 해도 미국 글로벌 파운드리, 대만 UMC에 밀린 5위였는데 2분기에는 단독 3위까지 올라왔습니다.



삼성전자와 TSMC의 대결도 흥미롭지만 SMIC가 순위를 치고 올라오는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자료출처=트렌드포스

언제라도 뒤집힐 수 있는 아슬아슬한 점유율 차이이긴 해도 어쨌든 삼성전자의 바로 뒷 순위입니다. 심지어 1, 2분기 모두 흑자입니다. 3분기 실적은 8일에 나온다고 합니다.


SMIC의 주요 고객사의 80%는 중국에 있습니다. 화웨이의 극자외선(EUV) 없는 7나노 칩부터 마이크로미터(㎛·100만 분의 1m) 공정 단위의 8인치 웨이퍼까지 다양한 반도체를 고객사 주문에 따라 생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레거시 반도체부터 아주 차근차근 기술 업그레이드를 하는 모습이고요. 국내의 열악한 시스템 반도체 생태계와는 달리 수요가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는 것도 장점이죠. 화웨이를 주축으로 한 중국의 시스템 반도체 설계 업계도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왔다는 게 업계 중론입니다.


◇우리나라 소부장 업계도 분위기 ‘센싱’=중국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자 우리나라 소재·부품·장비(소부장) 업체들도 중국 시장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습니다.


실제 예전부터 중국 시장 진출에 눈독 들였던 회사는 물론 우리나라 칩 메이커들과 아주 끈끈한 관계를 가져온 몇몇 국내 회사들까지도 중국 거래선을 뚫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요.


몇 개월 전만해도 소부장 업계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 "중국 시장 아직 따라오려면 멀었다", "규제가 첩첩산중인데 어떻게 되려고 거기까지 진출하는 것이냐"라는 평가가 대세였지만 말이죠. 이제는 앞서나간 업체들의 행보와 수주 현황 등을 면밀하게 파악해서 진출을 검토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더 무서운 건 '반도체 굴기'로 중국의 반도체 공급망이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는 건데요. 중국 안에서 소부장 고도화가 이뤄지면 몇년 뒤에는 한국 업체들이 비집고 들어갈 시장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는 섬뜩한 분석까지 나오는 추세입니다.


물론 아직 중국의 움직임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한 업계에 정통한 관계자는 "중국은 근본적인 설계 방법으로 접근한다고 보기는 힘들고 한국의 D램을 흉내내는 것에 가깝다"면서 "언젠가 큰 불량 사고를 겪는다면 삼성·SK와 격차가 좁힐 수 없을만큼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도 예측했습니다.


그럼에도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참 중요한 때인 듯 합니다. 우리의 뛰어난 D램 기술에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좋아도 중요한 변곡점에서 그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은 다소 안일하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오늘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해령의 하이엔드 테크]와 함께 멋진 일주일 되시길 바랍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