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서울시의 역점 사업인 장기전세주택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재원 확보 방안을 모색한다. 서울시가 저출생 문제 해결을 위해 신혼부부를 위한 장기전세주택을 늘리겠다는 방향을 세웠지만, 장기전세주택의 사업 손실이 상당한 데다가 SH공사의 주요 매출원인 택지 개발이 한계에 부딪혀 재원 확보가 절실해졌기 때문이다. 서울시도 장기전세주택의 주거 안정이 출산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판단하에 자체적인 재원 확보 이외의 ‘핀셋 지원’을 정부에 요청하고 있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SH공사는 최근 ‘지속가능한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위한 재원 방안’ 용역 입찰 공고를 냈다. 이번 용역은 장기전세주택을 지속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재원 구조를 분석하는 동시에 국고 지원 필요 여부와 적정 지원 규모를 도출하는 것이 목적이다. 장기전세주택은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최장 20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으로 서울에 2007년 도입됐다. 서울시는 신혼부부를 대상으로 한 장기전세주택2(미리내집) 제도를 올해 도입했고 매년 4000여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SH공사가 장기전세주택 공급 재원 마련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장기전세주택의 사업 손실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SH공사와 서울시가 공급한 장기전세주택은 총 3만 5000여 가구로 전체 SH 임대주택(23만 3540호)의 약 15%다. 하지만 지난해 연말 기준 장기전세주택의 사업 손실은 1895억 원으로 전체 임대주택사업 손실 4397억 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3%에 달했다. 장기전세주택은 월세 없이 보증금만 받기 때문에 SH공사 회계상에는 부채로 잡힌다. 향후 주택 노후화로 인한 수선유지비 발생이 본격화하면 장기전세주택의 사업 손실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더욱이 회사의 주요 매출원인 택지 분양도 미래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SH공사의 전체 매출에서 택지 분양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88%(1조 9135억 원 중 1조 7004억 원), 지난해 84%(1조 2994억 원 중 1조 955억 원)로 절대적이다. 문제는 이제 서울에 ‘빈 땅’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SH공사가 가장 최근 진행한 고덕강일 공공주택지구, 강서구 마곡지구 개발 사업은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향후 용산국제업무지구, 서초구 성뒤마을, 강남구 구룡마을 개발 사업 등이 예정돼 있지만 과거와 같은 대규모 개발은 아니다. SH공사의 한 관계자는 “서울에 남아 있는 땅이 한정적이어서 공사의 고민이 큰 것은 사실”이라며 “3기 신도시 개발 참여를 촉구하고 대관람차인 '서울링' 같은 수익 사업에 뛰어드는 것도 새 먹거리를 찾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전세주택 공급 확대 기조와 SH공사의 재원 고갈이 맞물리면서 서울시는 정부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현재 장기전세주택에는 주택도시기금을 통한 연 2.5%의 융자 지원을 제외한 별도의 국고 지원이 없다. 서울시는 장기전세주택 입주자의 소득을 가구별로 따져 소득이 낮은 이들에 정부가 지원 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서울시 장기전세주택2는 한 달 소득이 974만 원(도시근로자 월평균 소득 180%)인 무자녀 맞벌이 부부도 자산 기준을 충족하면 입주할 수 있을 정도로 여타 임대주택보다 소득 기준이 완화된 편이다. 서울시는 9월 국회에서 개최된 서울시와 국민의힘 예산정책협의회에서도 장기전세주택 입주 가정의 평균 출생아 수(2명)가 일반 공공임대주택(1.8명)보다 많다며 저출생 대응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