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도바 대선서 '친EU' 산두 승리…친러파 약진에 EU 가입 험로

■산두, 결선서 '55.3% 득표'
국내투표선 경쟁 후보에 밀려
재외 유권자, 몰표 받아 승리
경제난 파고든 친러세력 약진
EU 가입 등 핵심정책 악영향
집권당 내년 총선도 가시밭길

3일 마이아 산두 현 몰도바 대통령이 재선 확정 뒤 키시너우에 있는 선거본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연설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인접국인 동유럽의 옛 소련 국가 몰도바에서 친(親)유럽연합(EU)파인 현 대통령이 친러시아 후보를 가까스로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마이아 산두 대통령은 2030년 EU 가입을 위해 속도를 낼 계획이지만 친러 세력의 약진으로 당장 내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4일(현지 시간) 몰도바 선거관리위원회(CEC)에 따르면 행동연대당(PAS) 소속의 산두 대통령은 대선 결선투표 개표를 마무리한 결과, 득표율 55.33%로 재선을 확정 지었다. 친러 성향의 제1야당 몰도바공화국사회당(PSRM) 소속 알렉산드르 스토이아노글로 전 검찰총장(44.67%)과는 10.66%포인트 차이다.


이날 결선투표에는 168만여 명의 유권자가 참여해 약 54%의 투표율을 기록했다. 특히 산두 대통령은 몰도바 내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48.81%의 득표율로 스토이아노글로 후보(51.19%)에게 밀렸다. 하지만 재외 유권자들의 80%가 표를 몰아주며 가까스로 승리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스토이아노글로 전 검찰총장은 지난달 20일 치러진 대선에서도 예상을 웃돈 25.95%의 득표율을 기록해 산두 대통령(42.49%)의 과반 득표를 저지했다. 결선투표에서는 이보다 더 약진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 같은 선거 결과는 친러 세력이 몰도바의 경제난을 파고든 데 따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인구 250만 명의 소국이자 유럽의 최빈국인 몰도바는 1991년 옛 소련에서 독립한 후 친러시아와 친유럽 성향의 정권이 번갈아 집권했다. 2020년 산두 대통령이 집권한 뒤 몰도바는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듯했으나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점으로 친러 세력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친러 세력은 러시아와의 교역이 줄며 몰도바 물가가 치솟았고 경제난이 심화된 점을 공격했다. 스토이아노글로 후보는 EU와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 잡힌 외교정책을 수행하겠다고 밝혀왔다. 반면 세계은행(WB)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산두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를 비판하며 EU 가입을 추진하는 등 친EU 행보를 이어왔다.


산두 대통령은 러시아의 선거 개입으로 스토이아노글로 후보가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이날 선거 승리 연설에서 “몰도바는 더러운 돈, 불법적인 표 매수, 범죄 조직의 선거 방해, 우리 사회의 증오와 공포 확산 등 유럽 역사상 전례없는 공격을 받았다”며 "몰도바 국민 여러분이 역사책에 기록될 만한 민주주의의 교훈을 줬다. 자유·진실·정의가 승리했다”고 강조했다. 산두 대통령은 공약으로 내세운 몰도바의 EU 가입을 2030년까지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몰도바는 앞서 10월 20일 대통령 1차 선거와 함께 EU 가입에 대한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EU 가입 찬성률은 절반을 겨우 넘는 50.35%에 그쳤다.


EU 가입 찬성률이 높지 않은 데다 이번 대선에서도 친러 세력이 약진하면서 집권당이 당장 내년에 치러지는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의회 과반 확보에 실패하면 2030년 EU 가입 목표도 흔들릴 수 있다.


한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산두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된 후 자신의 X(옛 트위터)에 축하 인사를 전하면서 “몰도바와 유럽 통합적인 미래를 향해 계속 협력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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