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하니까 오래했다_ 8년 묵은 불꽃 터뜨린 배소현의 골프論

“재능 없으니 잘못하면 떨어질 거란 인식으로 지금까지”
결혼? 다정할 수 있는 사람, 다정하려고 노력하는 사람과


올해 우승이 나올 거라고 예상한 사람도 드물었을 텐데 배소현은 데뷔 첫 승을 넘어 2승, 3승을 했다. ‘단독 다승왕’ 타이틀을 놓고 행복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우승을 하고 난 뒤엔 “저 같은 선수를 보는 재미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라는 메시지를 담담하지만 당차게 밝혀 골프 팬들의 눈을 다시 뜨게 했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정규 투어 데뷔부터 8년. 조용히 때를 기다리다 꾹꾹 쌓아온 ‘포텐’을 배소현은 한꺼번에 터뜨렸다. 놀랄 것도, 설렐 것도 없이 똑같은 일상을 걸어가던 우리는 배소현을 통해 우리 안의 불꽃에도 다시 주의를 기울이게 됐다.




‘늦게 핀 꽃’이라는 수식어가 많이 사용된다. 어떻게 생각하나?


“굉장히 감사한 수식어라 생각한다. 그동안 스스로 많은 연습을 하면서도 (우승에) 도달하지 못하고 끝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좋은 결과를 내고 있으니 맞는 말이다.”



꽃을 좋아하나? 그렇다면 어느 꽃을 가장 좋아하는지.


“꽃이란 꽃은 웬만하면 다 좋아한다. 고양이를 키우고 있어서 고양이한테 좋지 않다고 알려진 백합 말곤 다 좋다. 꽃 받을 일이 많아진 것도 감사하다. 엄마도 되게 좋아하셔서 제가 받은 꽃다발을 항상 꽃병에 예쁘게 담아주신다.”



우승은 올해 터졌지만 성적이 나기 시작한 건 2022년부터다. 톱10 진입 횟수가 확실히 많아졌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


“정말 2021·2022년 이때를 많이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그 무렵에 뭐랄까 운동 스타일에 변화가 있었다. 레슨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특히 그렇다. 그전까진 ‘이렇게 해야 한다’ 하면 그렇게 하는 것 자체만 생각했는데 2021년쯤부턴 코치님 말대로 하려면 어떤 감각을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에 따라 피드백을 보고하고 또 거기 맞춰서 조금 바꿔서 해보고 하는 식으로, 제 감이랑 차츰 일치시키는 쪽으로 했다. 그러고 나서 빠르게, 빠르게 좋아진 듯하다.”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다운스윙 동작에서 회전하는 감을 살릴 때 ‘(왼발을) 디뎌 놓고 돌라’는 조언을 받았다. 그러면 이 디디는 감각이 내가 하는 느낌이 맞는지 계속해서 대화를 하는 거다. 다른 쪽으로도 얘길 해보고. 연습장엔 코치님이 늘 있지만 코스엔 코치님이 없지 않나. 그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내 감이 중요한 것이다. 그 감을 찾으려고 평소에 노력했다. 대회장에서도 경기 끝내고 ‘이런 볼 구질이 나왔고 이런 느낌이었다’라고 세세하게 풀어서 말씀드렸다. 그러고 나서 받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연습하니 효과가 더 좋았다.”



2017년 정규 투어 데뷔 전 2·3부 투어 경력이 거의 6년이다. 좌절감이 컸던 시기도 있었을 텐데.


“2019년에 아버지가 아프셨다. 골프도 잘 안 됐다. 어떤 한 대회에서는 스스로 너무 프로답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망하기도 했다. 스코어가 엉망인 건 아니었는데 내용 면에서 회의가 들었다. 2019년 시드전 앞두고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듬해까지 힘든 시기를 겪었다.”



2020년엔 허리 부상도 있었다.


“걷는 것도 잘 못할 만큼 꽤 심했다. 걸음을 디딜 때마다 아팠다. 클럽 테스트를 마치고 차에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다리가 안 움직이는 거다. 다음날 바로 시술에 들어갔다.”



회복까지 과정은?


“그해 겨울은 코로나19 때문에 국내 훈련을 했다. 시술 후 회복하느라 두 달 일정의 팀 훈련 중 한 달밖에 못 참여했다. 처음 9홀 라운드를 도는데 3홀 치고는 너무 아파서 ‘이거 이러다 정말 은퇴해야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스윙이 전혀 안 됐으니까. 그다음부턴 쇼트 게임이랑 퍼트 연습만 하면서 근력 운동하는 시간을 좀 더 많이 가져갔다. 호흡부터 시작해서 코어를 잡는 운동을 굉장히 디테일하게 했다. 그렇게 4주를 꼬박 반복했다. 한 주 한 주 몸이 달라지기 시작하더라.”



하부 투어 뛰면서 그래도 즐거웠던 기억은?


“아버지랑 투어를 다녔다. 잠깐씩이지만 가족이랑 다 같이 시간을 보냈던 때가 제일 즐거웠던 것 같다. 그런 시간을 더 많이 갖지 못한 게 후회되기도 한다. 2·3부 투어 오래 뛰면서 대부분의 시간은 스스로 열정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겁게 생각했었다.”



투어 선수라는 자체를 즐거움 삼았다는 얘기인가?


“저는 ‘선수’라는 위치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선수 생활을 가능한 한 오래하고 싶다. 할 수 있을 때까진 해보자는 주의다.”





그 당시 같이 뛰면서 친하게 지낸 선수가 있나?


“주로 동갑내기 선수들이랑 친했다. 유수연, 황예나, 강지원 등이다. 2부 투어 대회 같이 다니고 함께 정규 투어 올라와서도 재밌게 지냈다.”



첫 우승 뒤 2승하기까지 새언니(올케)가 도움을 줬다고.


“혼자서 뭔가 답이 안 나올 때마다 오빠네 부부와 소통을 많이 한다. 그러면 답이 나오거나 답으로 가는 빠른 길이 보인다. 새언니는 음악을 가르치는 사람(재즈 보컬 트레이너)이다. 같은 예체능 분야라 그런지 알게 모르게 연결된 부분이 많더라.”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받았나?


“첫 승 뒤에 골프도 그렇고 개인적으로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그렇고 뭔가 좀 안 풀리는 시기였다. 새언니한테 털어놓으니 지금 느끼는 감정들을 하나하나 얘기해보라고 하더라. 그렇게 엉켜있던 걸 풀었고 풀어진 하나하나에 대한 답을 새언니가 줬다. 새언니네 가서 하룻밤 자면서 그렇게 풀어놓고 보니 생각보다 별거 아닌 고민인 거다.”



가족 중에 그런 존재가 있다는 건 큰 축복이다.


“힘들면 우리한테 기대면 된다고 새언니랑 오빠가 항상 얘기해준다. 지난 추석에도 새언니랑 얘기만 3시간을 나눴다. 새언니가 그러더라. 오빠를 처음 만났을 때 늘 동생을 배려하고 걱정하는 마음씨가 보여서 더 호감이 생겼다고. 집안에 운동하는 아이가 있으면 부모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리기 마련인데 두 살 터울인 오빠는 그런 걸 다 이해해주고 자신도 서포트해주겠다고 말하곤 했다. 어릴 때부터 오빠랑 싸울 때 제일 크게 혼날 만큼 다른 무엇보다 남매 간 우애에 있어서 교육을 철저히 받기도 했다.”



두 번째 우승 직후 방송 인터뷰가 큰 울림을 줬다. 준비한 코멘트인가?


“그 전 주에 남자 투어 황중곤 선수랑 밥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중곤 오빠가 ‘이런 얘긴 나중에 공개적으로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 2승째를 한 뒤에 중계 캐스터님이 팬 분들께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느냐고 했고 ‘아, 지금 하면 되겠다’ 싶어서 하게 됐다.”


(배소현은 8월 더헤븐 마스터즈 우승 뒤 현장 인터뷰의 마지막에 이렇게 얘기했다. “주니어 때부터 잘 치진 못했던 선수거든요. 프로에 와서 조금씩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선수인데 저 같은 선수를 보는 재미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많이 응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시 코멘트가 방송을 타고 기사로도 나가면서 마음에 와 닿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주변 반응은 어땠나?


“평상시 갖고 있던 생각을 말한 것이기도 하다. 투어 올라오자마자 잘하는 선수들이 많고 그 선수들 보면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모두 다 그런 선수들일 순 없지 않나. 보는 입장에선 바로바로 잘하는 이들만 보면 좌절감을 느낄 수도 있으니까 저 같은 선수, 저 같은 사례도 있다는 걸 말하면 묵묵히 노력하는 선수들한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중에 박민지 선수가 ‘귀감이 되는 말이었다’고 해줘서 감사했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는 이 순간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많은 게 바뀐 듯하다.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 딸이 잘하는 모습 보여드려야 한단 생각에 연습에 더 매진했고 안 되면 더 힘들어했다. 근데 돌아가시고 나니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어차피 한정된 시간인데 같이 시간을 더 보내는 게 맞는 거였다’는 생각. 인생의 우선순위도 그때 다시 매기게 됐다. ‘내가 하는 일에만 너무 몰두하면 안 되겠구나’ 하는. 하고 있는 일에 시간과 정성을 쏟아 부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살필 필요도 있다고 마음먹게 됐다. 지금은 엄마랑 투어를 다니는데 그래서 가능한 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많이 만들려고 노력한다. 맛있는 음식 찾아서 먹고 재밌는 일 찾아다니고.”



승부의 세계에서 말처럼 쉽지는 않은 생활일 것 같다.


“거의 매주 대회에 나가다 보니 어느 순간 결과에만 매몰되기가 쉽다. 근데 투어는 길고 선수 생명도 긴 편이다. 결과만 찾다 보면 남는 게 없을 거다. 소소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을 했을 때 남는 게 있더라. 그래서 조금씩이라도 그런 부분을 채워 가보려 하고 있다. 내가 정말 뭘 좋아하는지도 틈 날 때마다 물어보고 생각한다.”



아버지한테 처음 골프를 배웠던 그날을 기억하나?(배소현의 아버지는 국가상비군 코치를 지낸 배원용씨다.)


“딱 그날이 떠오르는 건 아닌데 골프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아빠가 계속 노출해주던 기억이 난다. 원래부터 딸을 낳으면 골프를 시킬 생각이셨더라. 근데 너무 일찍 선수 지망 생활을 하면 질려할까 봐 어릴 땐 꾸준히 골프에 노출만 시켜주셨다. 골프 방송을 늘 틀어 놓고 가끔 연습도 시키고 하면서. 완전 꼬맹이 시절에 아빠가 어른들 골프채를 직접 잘라서 그립을 끼우고는 ‘안 쳐도 되니까 들고만 다녀라’ 하셨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채가 아마 지금도 엄마 집 어딘가에 있을 거다.”





아버지가 올 시즌 함께였다면 어떤 얘기를 해주셨을까?


“그냥 ‘잘했다’ ‘잘한다’ 하실 거다. 엄마도 덤덤하게 ‘고생했다’ ‘잘했다’ 하셨다. 마찬가지지 않을까. 부모님은 항상 저를 믿고 계셨기에 아빠한테도 아마 막 ‘서프라이즈한’ 일은 아니었을 거다.”



오랜 기간 투병하셨나?


“뇌종양으로 1년 반 정도. 생존율이 너무 낮은 종양이어서 반년 만에 거동도 못 하게 되고 급격하게 안 좋아지셨다.”



어릴 적 육상을 했다고 들었다.


“운동을 잘하는 편이어서 학교에서 시켰다. 단거리랑 장거리 다 했고 태권도도 했었다. 3개 종목으로 모두 시 대회 나갔었는데 전부 2등 했다.”



생전 처음 출전한 골프대회가 2011년 프로 테스트(준회원 실기평가 본선)였다고. 그 전에 주니어 대회 나갈 기회는 전혀 없었던 건가?


“아버지한테 선수 한 번 해보겠다고 한 게 중3 때다. 골프해야 한다고 하니까 학교에선 수업을 빼주진 못한다고 하더라. 이렇게 해선 죽도 밥도 안 되겠다 싶어 골프에 전념하면서 검정고시를 보기로 했다. 소속도 없고 하니까 주니어 대회 나갈 자격도 안 됐고 아빠도 프로 가서 잘하는 게 중요하니까 굳이 주니어 대회 내보내려 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뭔가 확신이 있으셨나 보다.


“골프 자체가 프로 게임이니까 프로 무대에 가서 잘하면 된다는 마인드셨다. 아빠는 아마추어 때 대학선수권 우승도 하고 잘 치는 선수였다. 그런데 더 커서는 피지컬도 그렇고 잘 치는 선수들과 격차가 너무 많이 느껴졌다고 하더라. 어릴 때부터 잘했던 선수들이 프로 가서 아쉽게 못한 선수도 많이 봤다고. 어차피 출발이 늦었으니까 프로 가서 잘한단 생각으로 하자고 하셨다.”



처음 우승이란 걸 해본 게 2011년 10월 점프(3부) 투어 대회인가? 우승 상금이 600만 원이었다. 어떻게 썼는지 기억나나?


“그때가 첫 우승 맞다. 대회를 나가기 시작한 게 그해가 처음이었는데 나름 준비가 많이 됐다고 생각했었다. 골프 하는 또래들이랑 경쟁해본 게 처음이었고 내가 많이 뒤에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되게 열심히 노력했고 우승까지 하면서 정회원을 딸 수 있었다. 아빠는 그해 바로 정회원을 딸 거라곤 생각 못했다고 하더라. 아빠는 끝내 프로 전향을 못했던 선수였고 그래서 더 많이 기뻐하셨다. 상금? 그냥 맛있는 거 잘 먹었다.”



골프 외에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건?


“골프도 잘하는지 의문이 들긴 하는데 그 외 잘하는 건 정말 잘 모르겠고 공연이나 전시 보는 걸 좋아한다. 뮤지컬 좋아하고 최근엔 발레 보러 갔었다. 무용, 연극도 좋아한다.”



사람들이 ‘이건 반전이다’ ‘반전 매력이다’ 하면서 놀라는 건 뭐가 있을까?


“반전 매력은 모르겠고 ‘보다 보니 팔자걸음이 심하다’는 얘길 좀 들었다. 스스로는 ‘그 정도는 아닌데’ 했는데 유튜브에 뜬 영상을 우연히 보고는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됐다. 영상에 ‘배소현의 시그니처 걸음’이라는 설명도 있더라.”



이시우 코치와 7년째 함께하고 있다. 이 코치는 배 선수에게 어떤 존재인가?


“친오빠와도 코치님 관련한 얘기를 나눈 적 있다. 골프를 저한테 처음 가르쳐주고 프로로 만들어준 건 아빠지만 프로로서 경쟁력을 갖추게 해준 건 코치님이다.”





노장에 속하는 나이인데 거리가 계속 늘어난다. 평균 드라이버 샷 거리가 250야드 이상으로 톱5 수준이다. 드라이버 샷 할 때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올해 들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있다. 체중을 실어 잘 디뎌주면서 공에 힘이 실리도록 하는 것이다. 왼발이 잘 안 잡히면 빠져 맞는 느낌이 들고 그러면 구질도 왔다 갔다 한다. 왼발이 잘 버텨주면서 체중이 실린 채로 치면 구질이 일정하고 힘도 더 잘 실린다.”



가녀린 체구에 가까운데 멀리 친다. 그 힘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가?


“저도 좀 신기할 때가 있다. 다운스윙에서 임팩트 내려올 때 골반을 빠르게 잘 쓰는 편이라는 게 코치님 분석이다.”



드라이버 외에 어릴 때부터 ‘내 특기다’ 하는 건 무엇인가?


“내세울 건 없지만 태권도를 하든, 육상을 하든, 또 공부를 하든 크게 못한 적은 없었다. 그와 다르게 골프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했는데 ‘아, 골프엔 진짜 재능이 없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골프를 오래할 수 있었던 것도 어떻게 보면 재능이 없어서가 아닐까 싶다. 타고난 게 없어서, 그래서 까딱 잘못하면 떨어질 거란 인식이 늘 있어서 오랫동안 놓지 않고 할 수 있는 것도 같다.”



‘못하니까 오래한다’라…. 남다른 의지가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뭘 시작하면 금방 질려서 그만두는 성격이지 꾸준한 스타일은 아니다. 겨울 비시즌 때 아이돌 그룹들을 집중적으로 파면서 팬심을 불태우기도 하지만 시즌 시작될 때면 딱 끊는다. 관심이 없어진다. 골프는 그렇지 않다. 질리지가 않는다. 너무 어렵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코스에 어떤 걸 준비해가야 하는지 점검하는 과정도 좋고 또 그 준비해간 부분들이 딱 맞아 떨어질 때 오는 성취감은 정말 특별하다. 우승했을 때도 눈물이 나질 않았다. 그동안 못 느껴본 감정이라 벅차올랐을 텐데도 그보다는 경기를 제일 잘 풀어나갔다는 증거가 우승인 거니까 성취감에 마냥 좋기만 했던 것 같다. ‘계속 이렇게 준비하고 하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구나’ 하는 확신에서 오는 희열이 있다.”



그동안 하고 싶었는데 못한 얘기가 있을까, 이 기회에 못다 전한 감사 인사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세 번의 우승이 찾아왔지만 그 과정에서 기복도 있었다. 아예 경기를 망친 적 있을 정도로. 은퇴에 대한 질문도 자주 받는데 ‘내가 20대라면 받지 않았을 질문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이런 식으로 뭔가 좀 조급해지는 것 같다는 고민이 있었는데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네 맘의 불꽃은 네 것이니 네 것만 따라가면 된다’고 얘기해준 분이 있다. 흔들릴 때 중심을 잡는 계기가 됐다. 다시 한 번 감사하게 생각한다.”



자주 듣는 칭찬은 어떤 건가?


“딱히 없는 것 같다. 저를 마주치는 분들의 반응이 달라지긴 했다. 첫 우승하고 반응이 ‘어, 배소현 프로 맞죠? 맞나?’였다면 두 번, 세 번 하고는 ‘어, 배소현이다!’로 바뀌었다. ‘많이 알아봐 주시는구나, 행동을 조심해야겠다’ 싶다.”



배 선수의 결혼관을 물어봐 달라는 지인이 있었다.


“다정한 사람이면 결혼할 수 있다. 제가 생각하기에 다정하다는 건 체력이 소모되는 일이기도 하고 또 공감 능력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결혼은 평생을 살 사람과 하는 거니까 다정한 사람이 1순위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도 다정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이다. 고쳐서 얘기하면 1순위는 다정할 수 있는 사람, 다정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얘기하는 게 맞겠다.”



계획하고 있는 다음 도전은 어떤 건가?


“일단은 세계 랭킹을 더 끌어올려서 해외 메이저 대회에 나가는 기회를 잡고 선수로서 성장의 계기로 삼고 싶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퀄리파잉을 본다면 트레이닝팀 등 여러 준비가 다 된 상태에서 볼 거다. 한 시즌을 다 같이 달릴 수 있는 팀이 꾸려진 뒤의 얘기가 될 것이다. 아직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



팬클럽의 플래카드에 적힌 문구가 인상적이다. ‘배소현 선수와 멋진 여행을 함께합니다.’ 왜 여행인가?


“팬 분들은 제가 노력하는 만큼 좋은 성과가 있길 바라지만 투어를 뛰는 자체를 통해 제가 즐거웠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적은 것 같다. 정말 감사한 일 아닌가. ‘우승하세요’도 좋지만 뭔가 여정 자체를 응원 받는 느낌이다.”


[서울경제 골프먼슬리]





PROFILE


출생: 1993년 | 프로 데뷔: 2011년 | 소속: 프롬바이오


주요 경력:


2011년 볼빅·군산CC컵 점프 투어 12차전 우승


2016년 무안CC·올포유 드림 투어 15차전 우승


2023년 SK네트웍스·서울경제 레이디스 클래식 공동 4위


2024년 E1 채리티 오픈, 더헤븐 마스터즈, KG 레이디스 오픈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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