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현장 찾은 스페인 국왕 진흙 맞고, 총리 차량 파손…군중들 분노한 이유

지난달 29일 기습 폭우로 수백명 사망
"미흡·늑장 대응, 피해 키워" 비판 여론




3일 스페인 동부 발렌시아 지역의 파이포르타를 방문한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왼쪽)가 치명적인 홍수 피해로 분노한 군중들 중 한 사람과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스페인 펠리페 6세 국왕과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대홍수로 큰 피해를 입은 현장을 찾았다가 분노한 수재민들에게 욕설과 함께 진흙을 맞았다. 이번 수해에 대한 당국의 안이한 대응으로 악화된 여론이 국왕 일행 현장 방문에서 나타난 모습이다. 스페인은 영국처럼 국왕이 상징적인 존재인 입헌군주국으로, 의회 다수당의 대표가 실질적 국가 수반인 총리직을 맡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다.


3일(현지시간) 로이터, AFP, EFE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펠리페 6세는 이번 수해로 최소 6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발렌시아주 파이포르타를 레티시아 왕비, 산체스 총리, 카를로스 마손 발렌시아 주지사와 함께 방문했다.


성난 주민들은 피해 지역을 걷는 펠리페 6세와 산체스 총리 일행을 에워싸고 진흙과 오물을 집어 던지면서 "살인자들", "수치", "꺼지라"고 욕설했다. 경호원들이 급히 우산을 씌우며 보호했으나 펠리페 6세와 레티시아 왕비는 얼굴과 옷에 진흙을 맞는 수모를 피할 순 없었다. 한 청년이 국왕을 향해 국가의 이번 수해 대응을 겨냥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외치는 모습도 보였다.


펠리페 6세는 다른 일행보다 더 오래 머물며 주민들을 위로하려 시도하는 모습이었지만 시간을 단축해 서둘러 방문을 종료했다. 파이포르타에 이어 찾으려했던 다른 수해 지역 방문도 취소됐다.


펠리페 6세는 이날 현장 방문 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영상을 통해 "피해 주민들의 분노와 좌절을 이해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온전하다는 희망과 보장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방송 RTVE는 이날 군중이 던진 물체에는 돌과 딱딱한 물체가 섞여 있었으며 경호원 두 명이 다쳐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산체스 총리의 차량도 군중들이 돌을 던지고 발로 차면서 창문이 깨지는 등 파손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산체스 총리는 이후 수해 주민들의 고뇌와 고통에 공감한다면서도 "모든 종류의 폭력"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스페인에서는 지난 달 29일 쏟아진 기습 폭우로 3일 기준 최소 217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수십 명의 소재가 아직 파악되지 않았고 약 3000가구는 전기가 공급되지 않는 피해를 입었다. 그러나 스페인 기상청이 폭우 '적색경보'를 발령한 때부터 지역 주민에게 긴급 재난 안전문자가 발송되기까지 10시간 넘게 걸리는 등 당국의 미흡한 대응이 인명 피해를 키웠고 이후 수색과 복구 작업도 느렸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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