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이 확실시되면서 6일 국내 증시도 주저앉았다.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에 포진해 있는 반도체·자동차·2차전지 등의 업종에 대거 먹구름이 끼일 것이라는 불안감이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날 시장은 시시각각 나오는 대선 결과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 등으로 수출 관련 종목은 대체적으로 힘을 못 쓴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전 가능성으로 건설주 등은 강세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트레이드’가 당분간 극성을 보일 수 있는 만큼 증시 변동성 확대에 대비한 보수적 접근을 주문했다.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지수는 전장 대비 0.52% 하락한 2563.51에 거래를 마쳤다. 오전 한때 상승 곡선을 그리던 코스피는 미국 대선 결과를 좌우할 7대 경합주에서 트럼프 후보가 유리한 모습을 보이면서 곤두박질쳤다. 외국인이 1082억 원어치를 팔아치우면서 지수를 끌어내렸다.
트럼프 후보의 부상으로 경고등이 켜진 곳은 반도체와 2차전지 관련주다. 트럼프 후보는 시종일관 해외 기업에 투자 보조금을 지원하는 ‘반도체지원법(칩스법)’과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대한 강한 불만을 표출해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에너지솔루션 등은 국내 시가총액 1~3위 업체다. 이선엽 신한투자증권 이사는 “민주당은 당근책으로 미국 내 공장 짓기를 유도했다면 트럼프는 무역장벽 등 채찍을 휘두르는 식으로 강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만 고대역폭메모리(HBM) 반도체는 우려를 덜어도 된다고 조언했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HBM의 경우 인공지능(AI) 산업 발전에 필수적이라 관세 부과로 가격이 오르면 미국 기업들에는 손해”라며 “빅테크 기업들이 가격을 크게 따지지 않고 데이터센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기 때문에 가격이 올라도 큰 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 이날 하락장 속에서도 SK하이닉스는 1.35% 상승했다.
2차전지에도 먹구름이 꼈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7,02%), 삼성SDI(-5.98%),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는 IRA의 세액공제(AMPC)로 겨우 영업이익을 메우는 상황이다. 오태동 NH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의 대선 후원금으로 거액을 지원해 실제 전기차가 폐기될 IRA 법안에 해당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 “풍력·태양광발전 등 중국이 우세한 분야는 규제를 곧바로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현대차·기아도 이날 각각 3.95%, 2.06% 빠졌다. 관세장벽 우려에 반응한 것이다.
거시적인 경제 흐름도 전망이 밝지 않다. 김태홍 그로쓰힐자산운용 대표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트럼프 후보 당선의 가장 큰 악재는 강달러”라며 “달러 약세가 돼야 국내 증시에 돈이 흘러 들어올 텐데 강달러 기조에서는 달러가 미국 시장에 머물러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반이민 정책으로 인한 인건비 급등, 관세 부과 등으로 고물가 상황이 지속되고 법인세 감세를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도 늘려 고금리 기조가 한동안 이어져 미국 증시에 대한 투자 매력도가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방산·조선·건설 업종과 안전자산으로 분류되는 금과 은은 수혜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후보의 ‘미국 우선주의’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하고 각국의 국방비 지출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날 한화에어로스페이스(7.04%), LIG넥스원(6.35%), 현대로템(3.11%)은 줄줄이 강세를 보였다. 아울러 불확실한 장세 속에 배당주의 투자 매력도가 커지면서 KB금융(3.30%), 신한지주(3.32%), KT&G(1.28%) 등도 상승 마감했다. 이 밖에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의 재건주로 분류되는 삼부토건은 상한가로 거래를 마쳤으며 HD현대건설기계·에스와이 등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오 센터장은 “미국의 재정 적자로 채권이 안전자산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서 금과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질 것”이라며 “달러 강세로 개인 입장에서도 미국 주식에 대한 투자 유인이 커질 것”이라고 짚었다.